시대를 앞서간 작가 이승조, 국제갤러리 재조명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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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cleus 77,1968 Oil on canvas 173.7 x 130.9 cm. 작가 유족 소장. [사진 국제갤러리]

Nucleus 77,1968 Oil on canvas 173.7 x 130.9 cm. 작가 유족 소장. [사진 국제갤러리]

1969년 이승조 작가의 모습. 1968년부터 파이프 그림은 이미 시작됐다. [사진 국제갤러리]

1969년 이승조 작가의 모습. 1968년부터 파이프 그림은 이미 시작됐다. [사진 국제갤러리]

지난 6~8월 유영국(1916~2002) 20주기 기념 전시로 주목받은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가 이번엔 이승조(1941~1990) 전시로 미술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유영국 전시와 마찬가지로 K1~K3까지 3개의 건물을 모두 활용한 미술관급 전시로, 이번엔 한국 기하 추상의 선구자였던 작가를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이른바 '이승조 알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파이프 화가' 이승조 재조명 #독보적 한국 기하추상 화가 #미술사적 조망 이후 첫걸음 #선과 색조로 입체성, 금속성 표현

이승조 회고전은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바 있다. 당시 전시가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이룬 작가의 예술세계를 미술사적으로 조망한 자리였다면, 이번 전시는 대중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왔다. 지난달 초 열린 프리즈 기간에 전시를 개막한 것도 그 이유다. 해외 미술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제갤러리는 이승조 전시를 내세웠다. 전시작 30여 점은 모두 유족의 소장품이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이승조 작가가 한국 추상회화의 흐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음에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많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며 "시대를 앞섰던 그의 실험과 시도를 앞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조는 이른바 '파이프 작가'로 불린다. 둥글고 긴 파이프 형상이 반복되는 캔버스, 숨막힐 듯 엄격한 구도, 차가운 금속 질감이 두드러지는 색조가 특징이다. "미래에서 온 작품"으로 보일 정도다.

그의 파이프 형상은 캔버스에 무한한 깊이와 공간감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평면에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캔버스에 무궁무진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파이프 건축을 한 느낌이다.

이승조, Nucleus 85-21,1985 Oil on canvas 199 x 299.5 cm. 작가 유족 소장. [사진 국제갤러리]

이승조, Nucleus 85-21,1985 Oil on canvas 199 x 299.5 cm. 작가 유족 소장. [사진 국제갤러리]

Nucleus 89-20, 1989 , Oil on canvas 145 x 89.5 cm. 작가 유족 소장. [사진 국제갤러리]

Nucleus 89-20, 1989 , Oil on canvas 145 x 89.5 cm. 작가 유족 소장. [사진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사진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사진 국제갤러리]

조안 기(Joan Kee) 미국 미시건주립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이승조는 세심하게 절제된 재료, 색채, 구성적 전략, 형태를 통해 작업을 생동하는 역장 속 모든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추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또 이일 평론가는 이승조의 그림을 가리켜 "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조는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뒤 1945년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서울에 정착했다. 서울 오산중·고교 시절 미술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60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62년 권영우, 서승원 등과 함께 기존 미술 제도와 기득권에 맞서 ‘오리진(origin)’을 결성했고, ‘아방가르드 그룹(AG)’ 창립에도 함께했다.

1968년은 그에게 아주 특별한 해였다. 제1회 '동아국제미술전'에서 대상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다. 국전에서 추상화가 서양화 부문 최고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후 그는 1971년까지 연달아 4회의 국전에서 수상했다.

그가 파이프 그림을 처음 선보인 것은 1968년부터다. 1967년부터 발표해온 '핵' 연작의 열 번째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그의 작품은 디지털로 인쇄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붓으로 직접 그리고 칠한 것이다. 마스킹테이프로 캔버스에 경계를 정한 뒤 납작한 붓으로 유화를 입혀 파이프를 그렸다. 붓의 가운데는 밝은 물감을, 양 끝에는 짙은 물감을 묻혀 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색을 칠한 후엔 사포질로 표면을 갈아냈다.

작가는 생전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아폴로 우주선 발사로 새롭게 우주의 공간 의식에 눈뜨고부터 시작"했다며 "이 작업이 작가인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이승조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토탈미술관, 독일은행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3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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