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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지금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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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있는 안 의상 동상과 혈서 태극기.[중앙포토]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있는 안 의상 동상과 혈서 태극기.[중앙포토]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외국인 교수는 최근 부산 용호동 백운포 산기슭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에 다녀왔다. 안중근 의사의 누이동생인 안성녀씨가 잠든 곳이다. 성녀씨 또한 오빠와 마찬가지로 온갖 신산(辛酸)을 겪어야 했다. 하얼빈·만주를 전전하다 광복 후 오륙도가 내다보이는 산기슭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2016년 광복절에 부산시 남구에서 성녀씨 묘소에 작은 비석을 세웠다. 비석 뒤에 이렇게 새겼다. ‘독립군 군복을 만들다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고문을 당했던 루시아여. 한국전쟁의 피난 중에 영도에서 영면하셨다. 이제 편히 안식을 누리소서.’

국가 위기 때마다 불러내는 영웅
김월배 교수의 ‘유해 찾기’ 18년
지금 ‘친일과 종북’ 싸울 때인가

 오는 26일은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3주년이 되는 날. 무덤 속의 성녀씨는 지금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아마도 오빠의 귀환을 소망하고 있지 않을까. 그나마 자신은 이 땅에서 숨을 거뒀지만 112년 전 중국 뤼순(旅順)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오빠는 지금도 이역만리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는 유언을 지키지 못한 회한에 피눈물을 떨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 의사 집안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거울이다. 모두 16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특히 안타까운 건 안 의사를 포함해 부모·아내·동생 등 가족 대부분의 유해가 유실됐다는 점이다. 오직 성녀씨만 고국 땅에 묻혔다. 혹자는 지금 찾아서 무슨 영광이 있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조국 독립에 일생을 바친 이들의 뼈 한 조각조차 없는 오늘이 누추한 건 분명하다.

부산 용호동 산기슭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씨의 묘소. [사진 김월배]

부산 용호동 산기슭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씨의 묘소. [사진 김월배]

 김월배 교수는 ‘안중근의, 안중근에 의한, 안중근을 위한’ 시간을 살아왔다. 2005년부터 18년 동안 안중근 유해 찾기에 전념해 왔다. 안중근을 찾아 하얼빈·뤼순부터 일본까지 훑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뤼순감옥에서 대외업무도 맡으며 안 의사의 흔적과 직접 만나려 했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은 후손의 도리, 대한민국 국민의 무한책임이다”는 믿음에서다.
 김 교수가 그간의 작업을 모은 백서를 마무리 중이다. 연내 출간될 『유해 사료, 안중근을 찾아서』다. 안 의사 활동 현장을 답사하고, 뤼순감옥 박물관 직원과 향토 사학자를 조사하고, 중국·일본·러시아에서 수집한 자료 100여 건을 정리했다. 안 의사가 묻힌 곳을 아직 특정할 순 없지만 앞으로 언젠가 꼭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사명감에서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안 의사를 소환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 분들을 찾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할까요, 안 의사는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훗날 안 의사 유해 발굴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 교수 말처럼 2022년 위기의 한국은 안 의사를 계속 불러내고 있다. 정치권에선 툭하면 안중근을 꺼내 들고, 문화판에서도 조명이 끊이지 않는다, 김훈의 베스트셀러 『하얼빈』 에 이어 뮤지컬 ‘영웅’과 동명의 뮤지컬 영화도 연말에 찾아온다. 현재진행형 안중근의 면모다.
 ‘대장부’ 안중근은 평화사상가였다. 한·중·일의 공존을 꿈꿨다. 일본을 ‘독부(獨夫·하늘과 백성을 버린 폭군)’라 꾸짖으면서도 외교에선 ‘한덩어리애국당’을 이뤘다고 인정했다. 북한이란 변수가 추가된 오늘날 우리는 100년 전보다 훨씬 더 위태롭다. 모든 화(禍)의 불씨는 내부 다툼과 분열이다. ‘친일과 종북’이란 썩은 지푸라기에 간당간당 매달린, 외눈박이·뒷눈박이로 맞서는 요즘 국정감사 행태는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고사 ‘방휼지세(蚌鷸之勢)’를 인용한다. 조개(방)와 도요새(휼)가 싸우다 모두 어부에게 잡혔다는 내용이다. 서세동점 당시 일본을 비판한 대목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 안성맞춤한 말이다. 무덤 속 안 의사의 당부가 들려온다. “친절한 바깥사람이 다투는 형제만 못하다”고 했다.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야 한다. 어제가 아닌 내일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