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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독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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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한동안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사용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기 무섭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면 손을 바쁘게 해야 한다고 해 뜨개질 키트를 스마트폰으로 주문해 놓고, 아직 박스도 뜯지 않았다. 죄책감에 사들인 책도 읽어내기 점점 어려워진다.

내 허약한 의지 만을 탓하는 것은 다소 억울하다. 사실 스마트폰에 굴복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오래 사용한 01X 번호를 유지하고 싶어 2G폰을 고집하다(태블릿을 병행 사용하긴 했다) 2016년께 완전 항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카카오톡이었다. ‘국민 소통 앱’으로 오는 메시지를 즉각 확인하지 않아 생기는 사회적 압박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될 서비스는 모두 스마트폰으로 수렴됐다.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중독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스마트폰엔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장치가 넘친다. 보상회로는 당초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이나 행동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고 지속적인 욕구를 만들어내도록 돕는 장치다. 높은 열량의 음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꼭 진짜 생존과 무관해도 보상회로를 자극해 욕구가 만들어지면 이는 곧 중독이 된다. 생존과 무관하지만 강한 중독성을 만드는 마약이 이런 경우다. 이를 일찍이 간파한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 중독 디자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현재의 경제 구조에선 유한한 인간의 시간과 관심을 차지하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 김병규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호모 아딕투스』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업자가 사업 모델을 바꾼다”고 진단했다. 이는 ‘중독 경제’로 명명된다. 편의점이 웹드라마를 만들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소속 연예인의 사생활을 중계하는 이유다. 하나같이 소비자와 소통을 강조하지만, 결국엔 중독을 심화하는 것이 목표다.

중독 경제가 이전 경제 시스템보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는 나름의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러 대응법 중 가장 공감한 것은 운동과 같은 ‘건강한 중독 찾기’다. 어서 뜨개질 키트를 찾아내 도전해야겠다. 따라 하려면 유튜브에 접속하고, 자랑하려면 소셜미디어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