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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아들이 성에 눈떴다…“불편한 영화지만 다양한 시선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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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영화 ‘나를 죽여줘’는 지체장애 청소년의 성 욕구를 정면으로 다뤘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영화 ‘나를 죽여줘’는 지체장애 청소년의 성 욕구를 정면으로 다뤘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한 대형 투자사는 이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면서, 조건을 내걸더군요. 주인공 민석의 아들 현재가 뇌병변이 아닐 것, 다리만 (장애 설정을) 한다든지…. 어쨌든 (관객이) 보기 편하게, 말이 어눌하거나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최익환(52) 감독은 영화 ‘나를 죽여줘’(19일 개봉)를 “규모 있게 만들려던 생각을 접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로 장애 문제가 미디어에서 이슈가 되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면서다.

‘나를 죽여줘’는 ‘여고괴담4-목소리’(2005), ‘마마’(2011) 등 상업영화를 만들어 온 최 감독이 2017년 한국 초연한 캐나다 연극 ‘킬 미 나우’를 보고 감동해 만든 영화다.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해온 캐나다 원작자 브레드 프레이저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 영화화 허락을 받았다.

최익환 감독

최익환 감독

춘천이 배경인 영화의 두 주인공은 선천적 지체 장애 청소년 현재(안승균)와 소설가인 홀아버지 민석(장현성). 갓 사춘기에 접어든 현재의 성(性) 욕구로 고민하던 민석은 자신마저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자 고통스러운 선택과 마주한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 존엄사 문제까지, 쉽지 않은 화두를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다뤘다. 기존 한국영화·드라마에서 장애가 신파적 감동, 인간승리나 편협한 시각에서 그려진 것과 다르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수원(이일화)과 민석의 불륜, 민석이 현재에게 청하는 마지막 부탁까지 영화의 세밀한 설정은 평균적인 사회 잣대로는 비윤리적·불법적인 상황이 많다. 하지만 나라면 어떨지, 관객이 자신을 대입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최 감독이 순제작비 4억 규모의 독립영화 제작 방식을 택한 것도, 원작이 자본의 논리로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최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많은 장애인을 만나보니 개개인 상황은 모두 달랐다. (투자사 요구대로) 이 작품의 불편한 요소들을 제거하면 굳이 이 영화를 할 필요가 없었다”면서 “부모 자식 사이를 넘어서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나리오 쓸 때 특히 남성들이 읽기 힘들어할 만큼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특히 민석이 현재의 성적 욕구 해소를 도울지, 그러다 사회적 편견으로 아들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를 두고 갈등하는 지점에서다. 민석과 현재에겐 더없이 현실적인 고민이지만, 한국 대중매체에서 그동안 제대로 조명하지 않은 소재인 만큼 수위 조절도 중요했다.

최 감독은 “연극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씻기는) 목욕탕 첫 장면에서 아들이 발기하는 문제가 생긴다. 객석의 90%가 여성 관객이었는데 남성보다 여성들이 오히려 그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수원이 처음엔 장난처럼 대화하다 민석의 진지함을 보고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과정을 관객도 함께 받아들여 줄 것으로 봤다”고 했다.

2019년 ‘킬 미 나우’ 삼(三)연 때 아버지 역을 맡았던 배우 장현성은 영화에서도 민석 역을 맡아 급격한 신체 변화를 겪는 과정을 안정감 있게 소화해냈다. 연극 ‘렛미인’(2016)으로 주목받은 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지금 우리 학교는’ 등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안승균은 이 영화의 현재 역할로 남아프리카 더반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도 받았다. 실제 장애인 배우 캐스팅도 고려했지만, 현재가 비장애 모습으로 나오는 판타지 장면 등을 감안해 비장애 배우로 낙점했다.

“저희가 느끼는 대로 현재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장애를 묘사하는 태도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최 감독은 안승균이 촬영 전 장애인 단체를 방문하고 뇌 병변 유튜버와 연락하며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소개했다.

영화엔 옳고 그름의 판단이 쉽지 않은 순간이 많다. 이런 민감한 지점을 짚고 넘어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최 감독은 “주인공 입장에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라고 했다.

“제작 막판까지 엎어야 하나” 고민할 만큼 좌초 위기가 많았던 영화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를 붙든 건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이 어딨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는 “결국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관계가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결국 자기의 삶을 자기가 선택하는 고유성을 인정하는 이야기죠.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정성과 애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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