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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사이먼 래틀 ‘클래식 만찬’…1300개 객석 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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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 13일 LG아트센터 서울의 개관 기념 공연.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의 연주에 맞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지난 13일 LG아트센터 서울의 개관 기념 공연.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의 연주에 맞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지난 13일 LG아트센터 서울이 공식 개관했다. 강남구 역삼동에서 22년간 운영한 LG아트센터를 마곡지구로 이전해 새롭게 건립한 공연장이다.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81)가 디자인했다. 혜화동의 JCC아트센터, 원주의 뮤지엄 산, 제주 섭지코지의 글라스하우스와 유민미술관이 그의 작품이다. 그가 설계한 대형공연장으로는 중국 상하이(上海)의 폴리시어터 이후 두 번째다.

기존의 역삼 LG아트센터는 1103석짜리 홀 하나만 있었다. LG아트센터 서울은 공연장이 두 개다. 1300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인 LG시그니처홀과 가변형 블랙박스 U플러스 스테이지다. 리허설 룸, 예술교육 시설 및 다양한 식음료 시설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마곡지구의 중심인 서울식물원 입구에 위치, 점차 울창해질 숲의 자연환경도 장점이다.

사이먼 래틀 “서울 관객들에겐 행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 서울의 전경. [사진 LG아트센터 서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 서울의 전경. [사진 LG아트센터 서울]

15도쯤 기울어진 타원형 통로인 ‘튜브’, 로비의 거대한 곡선 벽면인 ‘게이트 아크’, 마곡나루역부터 객석 3층까지 연결하는 계단인 ‘스텝 아트리움’ 등이 건축 콘셉트의 핵심이다. 로비 안에 들어서니 높은 천장과 넉넉한 공간 덕분에 답답함이 사라졌다. 둘러보다 보니 안도 다다오가 레퍼런스로 삼는 로마 판테온의 곡선미와 피라네시 동판화의 수직적 공간 구성이 적용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마곡나루역에서 몇 차례 에스컬레이터를 바꿔 타니 바로 공연장 로비로 이어졌다.

개관기념 공연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조성진(28)과 사이먼 래틀(67) 지휘의 런던 심포니였다. 협연 전 래틀은 “유럽에서는 새로운 공연장 건축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이토록 아름다운 공연장이 서울에 지어졌다는 점에 질투가 난다”며 “이 공연장의 탄생은 함께하는 우리에게도, 서울의 관객에게도 행운”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성진도 “2011년 역삼 LG아트센터에서 관객들을 만났던 좋은 기억이 있다”며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을 축하드리고 좋은 공연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런던 심포니가 롯데콘서트홀에서 자닌 얀선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고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던 2018년은 래틀이 부임한 지 반년밖에 안 된 허니문 기간이었다. 이번 내한에서 보여준 기량은 그와 악단의 최종 성적표라 할 수 있다. 래틀은 내년 런던 심포니를 떠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임기를 시작한다.

주 공연장인LG시그니처홀은 오케스트라 피트석을 포함해 1300명의 관객을 수용한다. [사진 LG아트센터 서울]

주 공연장인LG시그니처홀은 오케스트라 피트석을 포함해 1300명의 관객을 수용한다. [사진 LG아트센터 서울]

마침내 공연 시간.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 음악적 축성식처럼 제의적으로 다가왔다. 1층 중간 객석에서는 울림이 적고 건조하게 들렸다. 가공된 홀 음향이 아닌 원래 악기 소리의 특징이 정직하게 드러났다. 최대 음량까지 부풀어 오르는 관현악은 기름기가 빠져 담백했다. 심포니의 현악군이 특히 짜임새 있게 다가왔다.

조성진이 등장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했다. 첫 건반부터 소름이 돋았다. 강렬하고 과감한 자기 연출을 선보였다. 건반을 바라보고 목과 몸이 90도 각도를 이루는 집중력 있는 자세로 머리칼을 거칠게 흩날리며 건반을 내리쳤다. 그토록 열띤 연주 중에도 특유의 서정성을 잃지 않으며 주제를 변주시켜 나갔다. 제18변주를 감미롭게 해석하는 조성진을 래틀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조성진의 질풍노도는 앙코르인 쇼팽의 에튀드 Op.10-12 ‘혁명’에서도 이어졌다.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 7번에서 래틀은 약주와 강주를 대비시키면서 작곡가 만년의 내공에 순수함으로 접근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해석의 역사는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작곡가의 조국 핀란드의 해석과 그에 결코 뒤지지 않는 영국의 해석이다. 영국인 지휘자와 영국 오케스트라가 해석하는 시벨리우스 교향곡에는 따스하고 뭉근한 공기가 감돌았다.

12월까지 개관 페스티벌 계속

래틀은 라벨 ‘라 발스’에서는 작곡가의 정교한 측면을 부각하며 세기말적인 정서를 부풀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게 조절했다. 앙코르는 스트라빈스키 ‘불새’ 중 자장가와 피날레. 음악홀의 마법에서 깨어나 희망찬 일상으로 돌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선곡이었다.

처음 실체를 드러낸 LG아트센터 서울의 음향에 사람들은 차츰 익숙해졌지만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등 클래식 전용홀들도 시간이 지나며 개관 초기에 비해 음향이 달라졌다. LG아트센터 서울도 앞으로 어떻게 길들여가느냐가 관건이다.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페스티벌은 12월까지 계속된다. 클래식 공연은 다음달 3일 선우예권 협연 다비트 라일란트 지휘 국립심포니, 12월 11일 클라라 주미 강 협연, 파보 예르비 지휘 도이치캄머필하모닉 연주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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