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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 측근 재무장관 경질에도 시장 불안…정치생명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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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14일 관저에서 이날 임명된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부 장관과 만나고 있다. [트러스 영국 총리 공식 트위터 캡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14일 관저에서 이날 임명된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부 장관과 만나고 있다. [트러스 영국 총리 공식 트위터 캡처]

세금과 관련해 ‘정책 유턴’을 두 차례나 하고, 측근이자 내각의 이인자인 재무부 장관까지 경질했지만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집권 40일도 안 돼 정치적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된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트러스 총리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법인세 인상 폐지 계획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애초 트러스는 2023년부터 법인세율을 19%에서 25%로 올리기로 한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철회한 것이다. 지난 3일 소득세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낮추기로 했던 방안을 철회한 뒤 두 번째 정책 유턴이다.

트러스는 감세안 집행자였던 쿼지 콰텡 재무부 장관을 경질하고 제러미 헌트 전 외무부 장관을 후임에 임명했다. 헌트 장관은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트러스의 경쟁자였던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가디언은 “트러스의 발표는 예상보다 더욱 전격적”이라며 “집권 보수당 내 (반대파) 의원들과 시장의 강한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헌트 신임 재무부 장관이 트러스의 경제 정책을 사실상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대놓고 밝혔다는 사실이다. 더타임스는 “헌트 장관이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시점을 1년 미루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헌트 장관은 이날 BBC방송·ITV 등과의 인터뷰에서 “기대한 만큼 세금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일부 세금은 올라가야 할 것”이라며 “대신 모든 정부 부처에 (재정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 절감 방안을 찾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쿼지 콰텡

쿼지 콰텡

트러스는 감세를 추진하면서도 공공지출 삭감은 없을 것이라 공언해 왔는데 헌트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헌트는 “국민건강시스템(NHS), 공공서비스의 재정을 확대하는 동시에 세금까지 낮추겠다는 건 모순”이라며 트러스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트러스의 유턴 발표에도 금융시장 불안정은 계속됐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1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14일 오전엔 연 3.89%까지 하락(국채 가격 상승)했으나 트러스의 회견 뒤 연 4.33%로 마감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연 4.24%까지 떨어졌다가 역시 전날보다 0.25%포인트 오른 연 4.79%로 마감했다. 파운드당 달러 가치도 전날보다 1.32% 하락한 1.18달러를 기록했다.

마이크 오웬스 삭소은행 트레이더는 미국 CNBC 방송에 “트러스의 회견은 영국 금융시장 폭풍이 지나갔음을 확신시키기엔 도움이 안 됐다”며 “투자자들은 오히려 정책이 짧은 시간에 바뀌는 걸 보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졌고 영국 경제가 정치적 혼란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FT는 “영국 정부에선 17일 금융시장이 개장하면 또 혼란이 닥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정책 유턴에도 영국 정치권의 트러스 퇴진 압박은 그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타임스는 “콰텡 전 장관은 트러스가 자신을 경질하면서 겨우 몇 주 정도의 시간을 더 얻었을 뿐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코노미스트 등 영국 언론에선 트러스 총리의 임기가 ‘양상추 유통기한(약 1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조롱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집권 보수당의 지지율은 지난 11∼12일 유고브 설문조사에서 23%로 노동당(51%)의 절반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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