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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는 양상추 유통기한" 조롱…장관도 무시한 英총리 레임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법인세 인상과 쿼지 콰탱 재무장관 경질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4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법인세 인상과 쿼지 콰탱 재무장관 경질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법인세 인상으로 두 번째 ‘정책 유턴’을 하고, 측근인 재무장관도 경질했지만, 여전히 풍전등화(風前燈火)다. 집권 40일도 안 돼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얘기다. 정책 방향을 변경하고 반대파 인사를 신임 재무장관에 앉혔지만, 트러스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14일 트러스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인세 인상 폐지 계획을 철회했다. 당초 트러스 총리는 2023년부터 법인세율을 19%에서 25%로 올리기로 한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철회한 것이다. 지난 3일 부자 감세안으로 불리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낮추기로 했던 방안을 철회한 이후 두 번째 유턴이다.

또한 트러스 감세안의 집행자였던 쿼지 콰텡 재무부 장관을 경질하고 제러미 헌트 전 외무부 장관을 신임 장관에 임명했다. 헌트 장관은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트러스 총리의 경쟁자였던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을 지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러스 총리의 발표는 당초 예상보다 전격적”이라며 “집권 보수당 내 의원과 시장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트 재무장관 “증세로 유턴”

제러미 헌트 신임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 14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가를 나오고 있다.AP=연합뉴스

제러미 헌트 신임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 14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가를 나오고 있다.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헌트 재무장관은 트러스 정부의 경제 정책을 사실상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타임스는 “헌트 장관이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적용 시점을 1년 미루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헌트 장관은 이날 BBC방송, ITV 등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기대한 만큼 세금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일부 세금은 올라야 할 것”이라며 “대신 모든 정부 부처에 (재정지출이 늘어나지 않도록) 추가적인 절감 방안을 찾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를 추진하면서도 공공지출 삭감은 없을 것이라 공언해 왔는데 헌트 장관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FT는 “헌트가 트러스의 감세 정책을 최종분까지 묻어버리겠다는 걸 인정했다”고 했다. 실제로 헌트 장관은 “국민건강시스템(NHS), 공공서비스 재정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세금까지 낮추려 하는 건 모순”이라며 트러스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트러스 발표에도 금융시장은 불안

트러스 총리의 발표에도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계속됐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1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14일 오전엔 연 3.89%까지 하락(국채 가격 상승)했으나 트러스 총리의 기자회견 이후 연 4.33%로 마감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연 4.24%까지 떨어졌다가 역시 전날보다 0.25%포인트 오른 연 4.79%로 마감했다. 파운드당 달러 가치도 전날보다 1.32% 하락한 1.18달러를 기록했다.

마이크 오웬스 삭소은행 트레이더는 미국 CNBC 방송에 “트러스 기자회견은 영국의 금융시장 폭풍이 지나갔음을 확신시키기엔 도움이 안 됐다”며 “오히려 투자자들은 짧은 시간 내 정책이 바뀌는 걸 보며 불확실성이 더 커졌고 영국 경제가 정치적 혼란으로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FT는 “영국 정부 내에선 17일 금융시장이 개장하면 또 혼란이 닥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수당 “트러스 퇴진 논의 시작”

쿼지 콰탱 전 재무장관이 지난 14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1번가를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쿼지 콰탱 전 재무장관이 지난 14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1번가를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영국 정치권에선 트러스에 대한 퇴진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신이 심화한 상황이라서다. 더타임스는 “콰텡 전 장관은 자신이 경질된 것이 트러스 총리가 겨우 몇 주 정도의 시간을 더 얻었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며 “총리실 고위 관계자들도 트러스 총리가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코노미스트 등 영국 언론에선 트러스 총리의 임기가 ‘양상추의 유통기한(약 1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조롱까지 나온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집권 보수당의 지지율은 지난 11∼12일 유고브 설문조사에서 23%로 노동당의 51%에 절반 이하였다. 자신만만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조기 총선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당은 이르면 다음 주에 의회에서 정부 불신임 투표를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도 보수당이 ‘레임덕’인 트러스 총리를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임기가 양상추의 유통기한 정도밖에 안될 것이라는 조롱이 영국 현지에서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 WP 홈페이지 캡처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임기가 양상추의 유통기한 정도밖에 안될 것이라는 조롱이 영국 현지에서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 WP 홈페이지 캡처

보수당 내에서도 트러스 축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가디언은 보수당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트러스 퇴진을 논의하는 모임이 17일부터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트러스 반대파를 중심으로 총리 불신임투표 규정 변경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FT는 트러스 후임으로 수낵 전 장관과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등이 물망에 오른다고 전했다.

반면 트러스 지지자들은 트러스 총리가 퇴진하면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해 보수당이 와해할 것이라며 방어하고 있다. 지난 7월 존슨 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고 지난 9월 트러스 총리가 취임했는데, 석 달여 만에 총리를 두 번이나 바꾸는 일은 보수당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관은 가디언에 “지도자를 다시 바꾸면, 우리 당은 끝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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