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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장, 말벌 쏘여 숨진 근로자 빈소서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예초 작업 도중 말벌에 쏘여 숨진 익산시 기간제 근로자 A씨(62)가 지난 7월 벌 쏘임 사고를 당한 뒤 담당 공무원에게 보낸 사진. 사진 A씨 유족

지난 5일 예초 작업 도중 말벌에 쏘여 숨진 익산시 기간제 근로자 A씨(62)가 지난 7월 벌 쏘임 사고를 당한 뒤 담당 공무원에게 보낸 사진. 사진 A씨 유족

유족 “고인 두 번 죽인 막말” 반발 

최근 전북 익산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던 익산시 소속 60대 기간제 근로자가 말벌에 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은 익산시가 ‘2인 1조’ 작업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조문 과정에서 유족 측에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16일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4시 5분쯤 익산시 소속 기간제 근로자 A씨(62)가 익산 한 어린이공원에서 말벌에 쏘였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A씨는 1620㎡(490평) 크기의 공원에서 홀로 예초기로 풀을 베던 중이었다.

119 신고도 A씨가 직접 했다.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A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지난 5일 예초 작업 도중 말벌에 쏘여 숨진 익산시 기간제 근로자 A씨(62) 유족이 A씨 차량에서 발견한 익산시 작업 지침 일부. 사진 A씨 유족

지난 5일 예초 작업 도중 말벌에 쏘여 숨진 익산시 기간제 근로자 A씨(62) 유족이 A씨 차량에서 발견한 익산시 작업 지침 일부. 사진 A씨 유족

7월에도 벌 쏘여…“익산시 ‘119 신고하라’ 반복”

익산시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넉 달 단위로 익산시와 계약을 맺고 예초 작업과 수목 관리 등을 해왔다. 유족은 벌 쏘임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는데도 익산시가 아무 예방 대책도 세우지 않아 A씨가 숨졌다고 주장한다.

A씨 유족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익산시 작업 매뉴얼에는 ‘예초기를 돌릴 때는 작업 보조 근로자가 거리를 두고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사고 당시 아버지는 혼자서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7월에도 이미 벌 쏘임 사고를 당해 익산시에 알렸지만 이를 방지하는 기피제나 안전 보호구 등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담당 공무원들은 아버지에게 ‘벌에 쏘이면 119에 신고하라’는 말만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익산시 측은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반드시 2인 1조가 원칙은 아니다”라면서도 “지침 위반이 있었는지 점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 혼자서 예초 작업을 하던 도중 말벌에 쏘여 숨진 A씨(62)가 지난해 9월 익산시 담당 공무원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 사진 A씨 유족

지난 5일 혼자서 예초 작업을 하던 도중 말벌에 쏘여 숨진 A씨(62)가 지난해 9월 익산시 담당 공무원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 사진 A씨 유족

“죄 지었냐” “국어사전 찾아보라” 시장 감싼 공무원들 

정 시장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시장은 사고 이틀 뒤인 지난 7일 오후 7시쯤 익산시 공무원들과 함께 A씨 빈소를 찾았다.

유족에 따르면 정 시장이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유족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한 친인척이 “장례식장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여기에 안녕한 사람이 있어 보이냐. 유족은 슬픔에 잠겨 있는데…”라고 항의했다.

이에 정 시장은 “더 이상 할 말 없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때 수행 공무원 일부가 유족에게 “시장님이 어렵게 오셨는데 그렇게 말하면 되냐”, “우리가 죄를 지었냐”, “‘안녕하다’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을 찾아보라”고 언성을 높였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유족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막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헌율 익산시장. 뉴스1

정헌율 익산시장. 뉴스1

정헌율 “유족인 줄 몰라…기분 나빴다면 사과”

논란이 커지자 정 시장은 ‘유족인 줄 모르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정 시장 측 관계자는 “(당시) 테이블에 4명 정도 앉아 있었는데, 시장이 눈이 마주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며 “상복을 입고 있지 않아 유족인 줄 몰랐고, 그 중 한 명이 화를 내 상주에게 ‘죄송하다. 나중에 찾아 뵙겠다’고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족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렇게 (발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면 사과하는 게 맞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3선인 정 시장은 앞서 2019년 5월 다문화 가족이 모인 행사장에서 ‘잡종 강세’라는 표현을 쓰고, 이 말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문화 가족 자녀를 ‘튀기’라고 불렀다가 ‘인종 차별’ 논란이 일자 사과한 바 있다.

A씨 사고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익산시를 상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유족은 업무상 과실치사·직무유기 혐의로 정 시장을 비롯해 익산시 담당 공무원 등 5명을 17일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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