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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꺼내 찍은 지장에 걸렸다…의사 암매장 살인사건 전말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피고인은 범행 도구는 물론 사체를 유기할 장소를 미리 섭외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에게 의심받자 이미 숨진 피해자 시신 지문을 이용해 사문서를 위조하는 범행까지 저질렀습니다.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합니다.”

지난 14일 오전 부산지법 301호 법정. 형사5부 박무영 부장판사가 이같이 선고하자 피고인 40대 여성 A씨가 고개를 떨궜다. A씨는 지난 4월 6일 오후 9시쯤 부산 금정구 한 주차장 차 안에서 의사 B씨(60대)를 살해하고, 시신을 경남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지난달 A씨에게 징역 28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는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받은 피해자 가족은 피고인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검찰 구형보다 무거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 4월 발생한 부산 의사 살인 암매장 사건의 피해자 시신을 찾기 위해 경찰이 경남 양산에서 땅을 파고 있다. 사진 부산 금정경찰서

지난 4월 발생한 부산 의사 살인 암매장 사건의 피해자 시신을 찾기 위해 경찰이 경남 양산에서 땅을 파고 있다. 사진 부산 금정경찰서

주식정보로 만난 인연, 투자금 유용에 틀어져

두 사람은 2013년 말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됐다. 투자 정보를 공유하던 이들은 경남 양산의 한 원룸에 사무실을 차려 동업하며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의사로 일하던 B씨 돈을 건네받아 A씨가 굴리는 방식이었다. 수익이 높을 때 A씨는 수수료를 제하고도 B씨에게 월 수백만원가량 수익금을 안겨준 것으로 조사됐다.

둘 사이에는 억대 자금이 오갔다. 하지만 주식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A씨의 투자는 실패를 거듭했다. 결국 B씨는 원금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A씨가 투자금 명목으로 받은 돈 가운데 약 1억원을 생활비로 유용한 사실을 B씨가 알게 되면서 둘 사이는 크게 틀어졌다. B씨는 지난 3월 28일 임의로 쓴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며, 돈을 갚지 않으면 가족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겠다고 A씨를 압박했다.

“나무 심겠다” 하고 시체 묻었다

가족과 관계 악화를 우려한 A씨는 B씨를 해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는 치밀했다. B씨를 살해한 뒤 시체를 파묻기 위해 경남 양산의 지인 땅에 깊이 1.2m, 폭 2.5m 규격의 구덩이도 파뒀다. 그는 지인에게 “나무를 심으려 한다”며 둘러댄 뒤 포크레인을 불러 땅을 팠다. 범행에 이용한 차량도 지인에게 빌린 것이었으며, A씨는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인쇄물로 번호판을 가리기도 했다.

사건 당일 A씨는 차 뒷좌석에서 “월 100만~150만원을 줄 테니 (가족에게) 찾아오지 말라”는 취지로 B씨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B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뒷좌석에서 물건을 꺼내는 척하다 미리 준비한 끈을 이용해 조수석에 앉은 B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B씨가 이런 사실을 알리면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과 헤어질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A씨는 곧장 구덩이를 파둔 양산으로 차를 몰던 중 전원이 꺼진 B씨의 휴대전화를 인근 버스장류장에 버렸다. 위치 추적을 피하려 한 것이다. A씨는 구덩이에 시신을 밀어 넣은 뒤 직접 절반 정도 땅을 덮고 현장을 벗어났다.

수상한 깡통과 엄지 도장밥, 결정적 증거

그런데 이튿날 오전 9시30분쯤 A씨는 시신을 은닉한 장소를 다시 찾았다. 그는 시신의 왼팔을 꺼내 엄지에 인주를 묻힌 뒤 준비해온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이 계약서의 날짜는 지난해 6월 28일로 작성됐다. 동업 관계를 의심받을 것을 염려한 A씨가 두 사람 사이의 동업과 채무 관계 등이 이미 정리됐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한 뒤 지장을 찍은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B씨 시신이 발견된 경남 양산 야산의 전후 모습. 반년도 안 돼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사진 부산 금정경찰서

B씨 시신이 발견된 경남 양산 야산의 전후 모습. 반년도 안 돼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사진 부산 금정경찰서

사건은 ‘완전범죄’로 남을 뻔했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초기부터 A씨를 용의선상에 뒀다. 하지만 사전에 추적될 요인을 치밀하게 차단한 범죄인 데다 아직 시신이 확인되지 않아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범행은 심야에 이뤄졌고, 살해와 은닉현장에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A씨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서무성 금정서 형사팀장은 “일주일가량 A씨 행적을 쫓다가 시신을 매장한 건너편 마을 농로에서 CCTV를 발견했다. 직접 현장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범행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가 1시간 넘게 머물렀던 것을 확인했다. 시신 암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산화된 깡통 하나가 서 팀장의 눈에 띄었다.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산화됐다가 지상으로 드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깡통이었다. 서 팀장은 “깡통을 보고 이곳에서 최근 땅을 팠을 거라고 확신했다. 땅 주인에게 ‘시신이 나오지 않으면 책임지고 땅을 원상 복구하겠다’고 한 뒤 일대 땅을 팠다”고 했다. 이곳에서 결국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왼손 엄지에 묻어 있는 붉은 도장밥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결국 A씨는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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