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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 원두' 르완다서도 온다…'커피 좀 안다'는 이들 모이는 곳[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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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1차 대유행 전인 2019년 11월. 커피 원두를 잔뜩 챙겨 든 클라우드 간자 주한 르완다 대사관 1등 참사관 등 르완다 외교관 2명이 대구를 찾았다. 르완다산 커피를 '대구커피·카페박람회'에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는 스타벅스 원두 생산국으로 유명하다. 싱그러운 과일 향과 부드러움 뒷맛이 일품인 르완다 원두는 2008년부터 고품질 아라비카 원두를 스타벅스에 선별·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르완다 외교관들은 커피 박람회가 열린 대구 엑스코에 부스를 별도로 차렸다. 이들은 나흘간 머물며 8만여명의 관람객에게 커피를 소개했다.

2019년 르완다 대사관이 대구 커피박람회 현장에서 운영한 부스. 사진 대구시

2019년 르완다 대사관이 대구 커피박람회 현장에서 운영한 부스. 사진 대구시

'스벅 원두' 생산국 르완다에서 찾아올 만큼 대구는 '커피를 좀 안다‘는 커피인들 사이에선 이름난 커피 도시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대구커피·카페박람회가 열리고, 1999년 국내 스타벅스 1호 입점 전인 1990년에 이미 커피 브랜드가 태동한 말 그대로 커피에 '진심'인 곳이다.

대구가 커피·카페의 고장으로 인정받는 배경은 한국 커피·카페의 근본(根本) 도시 중 하나여서다. 그 출발은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재 화가 이인성(1912~1950)이 대구 중구 아카데미극장 옆에 다방(아루스 다방)을 차렸다. 당시 문인과 화가들은 다방에서 커피와 약차 등을 놓고 소통했다고 한다. 당시 다방은 지금의 카페와 비슷한 공간이다. 1946년 등장한 국내 최초의 클래식 다방인 '녹향'도 대구 중구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음악감상실 역할을 하는 음악다방인 '르네상스'· '하이마트' 등도 1950년대 일찌감치 대구에 선보였다.

커피콩을 직접 갈아 사이폰(압력 차이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으로 추출해 마시는 현재의 아메리카노와 유사한 커피 메뉴가 처음 등장한 다방도 1970년대 왕비다방 이란 이름으로 대구에 문을 열었다.

클래식 다방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대구 미도다방. 사진 대구시

클래식 다방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대구 미도다방. 사진 대구시

대구의 다방 흔적은 아직 드문드문 남아있다. 대구시 중구에 있는 1970년대 문을 연 미도다방이 대표적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클래식다방 모습 그대로 날마다 문을 열고, 달곰한 커피와 그윽한 향을 품은 약차 등을 판매 중이다.

국내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1890년대 전후로 전해진다. 고종이 특히 커피를 즐겨 마셨다. 처음엔 생두를 볶은 원두를 두드려 가루로 만든 뒤 헝겊에 넣어 한약을 짜듯, 일종의 걸러 먹는 커피였다고 한다. 김흥준 대구시 위생정책과장은 "커피·카페의 고장 대구는 전국으로 퍼져나간 국내 커피 브랜드의 성지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콰테말라산 엘인헤르또 농장발 최고급 원두로 내린 커피 김윤호 기자

콰테말라산 엘인헤르또 농장발 최고급 원두로 내린 커피 김윤호 기자

지난 11일 찾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커피명가 라핀카. 안명규(56) 대표가 카페 한편에 설치된 서랍장에서 원두를 끄집어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가 사용한 원두는 경북 경산에 있는 커피명가 공장 로스터리에서 손수 볶은 과테말라산. 엘인헤르또 농장발 최고급 원두다. 커피 원두는 가스 불을 정밀하게 조절해가며 잘 만든 로스터리에서 볶아야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

안 대표는 "국산 로스터기가 없던 1992년 국내 최초로 직접 로스터기를 개발했다. 원두 역시 2002년부터 인도네시아·과테말라 등 커피 원두 국가 산지를 찾아 직거래하기 했는데, 그전까지 농장 직거래 원두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 이전까진 일본 무역상이 조금씩 들여오는 원두로 커피를 마시는 게 국내 커피 시장의 모습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가 대구의 커피와 카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 대표는 1990년 대구에서 처음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김윤호 기자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가 대구의 커피와 카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 대표는 1990년 대구에서 처음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김윤호 기자

커피명가는 1990년 7월 경북대 후문에 처음 간판을 내걸었다. 사실상 국내 1호 커피 브랜드다. 단맛과 우유맛이 강한 인스턴트 커피가 일반화한 당시 커피 시장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브라질’·‘콜롬비아’란 커피 산지 이름의 핸드 드립 커피로 판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여기에 잘 꾸며진 거실 같은 공간에서 향이 가득한 커피를 음악과 같이 즐기는 카페 문화는 아주 생소했다.

커피명가를 시작으로 대구발 커피 브랜드는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빈치커피(1997년)·모캄보(2002년)·시애틀의잠못이루는밤(2004년)·핸즈커피(2006년)·마사커피(2008년)·더브릿지(2008년)·바리스타-b(2009년)·매쓰커피(2012년)·봄봄(2012년)·마시그래이(2014년)·하바나익스프레스(2015년) 등이 모두 대구발 커피 브랜드다.

대구의 커피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바리스타들도 한몫했다. 바리스타는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시작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구에선 그보다 4년이나 앞서 전문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국내 최초의 대학이 있었다. 대구보건대는 2003년 호텔조리음료계열 ‘와인커피전공’을 신설, 전문 바리스타를 양성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9 WBC 국가대표 선발전 금상 석미숙 바리스타, 2012 서울카페쇼 마스트오브커핑 우승 전현주 바리스타, 2013 한국바리스타챔피언십 챔피언 이광희 바리스타, 2016년 월드 라테아트 챔피언십 1위·2019년 밀라노 라테아트 챌린지 1위 엄성진 바리스타 등이 모두 대구 출신이다.

클래식 다방인 '녹향'의 간판. 사진 대구시

클래식 다방인 '녹향'의 간판. 사진 대구시

대구시는 커피·카페 근본 도시 명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김광석길·수성못 등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 지역 커피·카페를 권역별로 소개하는 '대구 카페 지도'를 배포했다. 또 대구 커피와 카페 실태조사·자료 수집을 거쳐 『대구 커피 이야기』라는 책 발간을 계획 중이다.

한편 올해 '2022 대구커피·박람회'는 오는 20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다. 국내외 바리스타들이 커피 강연과 시연 행사를 열고, 무인 커피머신도 만날 수 있다. 숨은 커피 장인을 뽑는 바리스타 경연대회도 예정돼 있다. 특히 50여개 커피 브랜드가 자신들의 커피 맛을 뽐내는 '커피 트랙' 행사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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