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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통신정보 544만건 국가가 엿봤다…"인권침해의 새 형태" [Law談]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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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인신 구속은 자제하고 있지만 사생활을 엿보는 통신·전자정보 압수수색을 무차별적으로 벌여 새로운 형태의 인권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의 법무대리인인 법무법인 '우리'변호사 등이 지난 1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고위공직자법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행위에 대한 헌법 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형사소송법학회의 법무대리인인 법무법인 '우리'변호사 등이 지난 1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고위공직자법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행위에 대한 헌법 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유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이슈 브리프’10월호에 ‘수사절차에서의 인권 강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 글을 통해 “가혹 행위, 진술 강요, 장시간의 조사 등 고전적 형태의 인권 침해 등도 여전히 관찰되고 있다”면서도 “인신구속 등 인적 강제처분은 인권 강화 방안에 따라 점차 자제되는 분위기” 라고 밝혔다.

대신 김 연구위원은 통신정보‧전자정보‧위치정보 등에 대한 압수 및 수색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 없이도 통신사로부터 개인 신상정보가 포함된 통신자료(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 및 해지일자, 전화번호, 아이디)를 제공받을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제공 받은 개인 통신자료는 전화번호 수를 기준으로 2019년 602만건, 2020년 548만건, 지난해 504만건에 이른다. 지난해 ▶경찰이 350만8452건으로 가장 많고 ▶검찰 135만5683건, ▶군수사기관·관세청·법무부·식약처 등 기타 기관 13만8725건, ▶국정원 3만1131건 순이었다.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을 표방하고 지난해 출범한 ▶공수처는 하반기에만 6465건의 통신자료 조회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수처는 당시 언론사 기자들을 포함해 범죄와 무관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조회를 벌인 것이 드러나 ‘사찰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통화했는지에 관한 정보인 통신사실확인자료의 경우 수사기관이 입수하려면 법원의 허가(통신영장 발부)가 필요하다. 통신사실확인자료에는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 일시 및 시간 등 통화사실과 인터넷 로그기록·접속지 자료(IP Address) 및 발신기지국 위치추적자료 등이 포함된다.

국가기관은 지난해 한 해 통신사실확인자료도 전화번호 수를 기준으로 44만5802건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34만8081건, 검찰 8만9203건, 기타 기관 7187건, 국정원 1110건 순이다. 신생 기관인 공수처도 법원으로부터 통신영장을 받아 220건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확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김 연구위원은 이들 수사기관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요구하는 영장의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는 “하나의 영장은 영장발부 대상자를 넘어 불특정다수의 제3자의 정보까지 대상이 된다”며 “이에 제3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 범죄와의 관련성과 상관없이 해당 당사자와 통화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실질적인 압수·수색 대상이 된다”고 짚었다.

이어 “과거 물건에 대한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의 폐단이 비유형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옮겨갔다”며 “과거보다도 더욱 광범위하고 심각한 사생활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물적 강제처분은 법률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 및 허가에 의하기만 하면 ‘합법적’이라고 할 게 아니라 이런 규정 자체가 인권 친화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숙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수사기관이 수사 편의를 명분으로 통신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조회하는 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7월 제동을 걸었다.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에 요청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도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한 것이다.

다만 헌재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도 수사에 필요한 통신자료는 조회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통신자료 조회 등에 대한 사법적 통제 필요성을 헌재가 눈감았다”라는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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