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니 가격 더 비쌌다…재활용도 안되는 '리필'의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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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플라스틱 용기에 든 세제와 리필용 제품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천권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플라스틱 용기에 든 세제와 리필용 제품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천권필

쓰레기사용설명서는…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다시 보면 보물이니”

[쓰레기사용설명서]

기후변화의 시대, 쓰레기는 더 이상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재활용·자원화의 중요한 소재입니다. 중앙일보 환경 담당 기자들이 전하는 쓰레기의 모든 것. 나와 지구를 사랑하는 '제로웨이스트' 세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따져보고 알려드립니다.

성 모 씨는 최근 세탁 세제를 사러 대형마트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해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비닐에 들어있는 리필 세제를 사려고 집었는데요. A사의 1.8ℓ(리터) 용량의 리필 세제 가격은 7800원으로 같은 제품인 플라스틱 용기(3ℓ, 9900원) 세제보다 쌌습니다. 하지만, 가격표에 작게 써진 100㎖당 가격을 보니 434원으로 플라스틱 용기(330원)보다 100원 이상 비쌌습니다.

“가격표를 보고서 믿기지 않아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을 다시 봤어요. 아니 이렇게 플라스틱 용기에 든 세제의 단위당 가격이 리필용보다 훨씬 싸면 누가 리필용을 사겠습니까.”(소비자 성 모 씨)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세탁 세제와 주방 세제, 샴푸 등 플라스틱 용기에 든 제품과 함께 리필용 제품을 함께 내놓는 생활용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인다는 이유에서죠. 실제로 세제와 샴푸 등 화학 성분이 들어간 플라스틱 용기는 세척이 힘들고 여러 소재가 혼합된 경우가 많아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샴푸나 세제 등의 용기를 반복해서 사용하도록 내용물만 비닐 포장재에 넣어서 리필용으로 판매하는 거죠.

대형마트서 리필용이 더 비싼 이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제는 리필용 제품이 환경은 물론 소비자에게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되느냐는 건데요. 실제로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아가 동일한 제품을 기준으로 100㎖당 가격을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리필용이 플라스틱 용기에 든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B사의 세탁 세제는 플라스틱 용기 제품(2.7ℓ)과 리필용 제품(2ℓ)의 100㎖당 가격이 각각 552원, 945원으로 거의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습니다. 같은 업체에서 만든 주방 세제 중에서는 리필용(606원)이 플라스틱 용기 제품(240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경우도 있었습니다.

C사의 섬유유연제 역시 100㎖당 가격이 플라스틱 용기(2ℓ)는 795원, 리필 용기(2.3ℓ)는 861원으로 리필 용기가 더 비쌌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비싼 돈을 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리필제품을 사야 하는 셈이죠. 대형마트 직원은 “가격 행사가 들어가면 어떤 때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제품이 비싸고, 어떤 때는 리필용 제품이 비싸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생필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는 시민의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생필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는 시민의 모습. 뉴스1

왜 리필용 제품을 더 비싸게 파는 건지 해당 세제를 생산한 생활용품 업체에 직접 물었습니다.

“같은 용량일 때는 플라스틱 용기 제품보다 리필용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하는데요. 다만 해당 제품은 플라스틱 용기는 대용량, 리필용은 소용량이다 보니 리필용 제품의 100㎖당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됐어요.”(A업체 관계자)

그렇다면 리필용 제품도 대용량으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리필용은 비닐 포장재라서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용기처럼 대용량을 만들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리필용은 정말 친환경적일까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리필용 세제와 뒷면에 표시된 재활용 등급. OTHER는 복합 재질로 만든 포장재라는 뜻이다. 천권필 기자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리필용 세제와 뒷면에 표시된 재활용 등급. OTHER는 복합 재질로 만든 포장재라는 뜻이다. 천권필 기자

리필용 제품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식도 따져봐야 합니다. 요즘 나온 리필용 제품을 보면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비닐 용기에 플라스틱 마개를 다는 등 복합 재질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재활용이 어렵다는 뜻이죠.

제대로 분리 배출하려면 물로 깨끗하게 세척한 뒤에 마개는 따로 잘라서 플라스틱으로, 나머지는 비닐로 각각 분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대부분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잔재물로 남아 소각 처리되는 게 현실입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리필스테이션에서 용기에 세제를 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리필스테이션에서 용기에 세제를 담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일부 대형마트나 화장품 업체들은 소비자가 용기를 가져와 내용물만 담아 가는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접근성과 가격 등 다양한 이유로 소비자들의 호응이 높지 않다 보니 이벤트성으로 일시적으로 운영하거나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매장도 있습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기업 입장에서도 리필 스테이션을 시도했는데 이용자가 적고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편익이 없으니까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유럽에서는 비닐로 포장한 리필제품 판매는 자제하고, 대신 생산자가 용기를 회수해 재사용하거나 소비자가 자기 용기를 들고 가서 리필하는 두 가지 방식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한국 역시 생활용품 포장 용기를 재사용하는 모델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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