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옆 칠궁 장희빈 잠들었는데...'프랑스판 장희빈' 놀라운 환생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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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대표적 고성(古城), 쉬농소(Chenonceau). 사진 프랑스 관광청 제공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대표적 고성(古城), 쉬농소(Chenonceau). 사진 프랑스 관광청 제공

조선 숙종에게 장희빈, 중국 당 현종에게 양귀비가 있었다면 프랑스 루이14세에겐 정부(情婦)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가 있었습니다. ‘왕의 여자’라는 것만 공통점일 뿐, 이들의 운명은 달랐죠.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는 귀족 출신으로 루이 14세 누이의 시중을 담당하다 왕의 눈에 띄어 정인 사이가 됩니다. 1661년, 루이 14세는 23세, 루이즈는 17세였습니다. 루이즈는 프랑스 중부인 루아르(Loire)에서 지역 유지의 딸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당시 루이 14세는 ‘태양왕’의 면모를 갖추기 전인 젊은 왕이었죠. 사랑에 빠지긴 했지만 자신을 정략결혼 시킨 어머니와 왕궁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루이 14세는 루이즈와 사이에서 아들 딸을 한 명씩 낳으며 6년간 정부로 삼았지만, 둘의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루이 14세가 루이즈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죠.

루이즈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 자료를 찾아보니 루이즈는 “왕의 정부로 공식적 인정을 받고 싶었으나 자신감이 별로 없었고 의존적이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의 정부가 된 10대 후반 20대 초반은 루이즈에겐 결혼 적령기였죠. 당시엔 좋은 신랑감을 찾는 게 여성의 생존과 직결됐던 때이니, 루이즈의 불안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루이 14세가 ‘드 라 발리예르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긴 했지만 루이즈의 마음을 달래긴 태부족이었죠. 결국 루이즈는 왕을 버리고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 공작부인 초상화. 저작권 (c) The National Trust for Scotland, Fyvie Castle; Supplied by The Public Catalogue Foundation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 공작부인 초상화. 저작권 (c) The National Trust for Scotland, Fyvie Castle; Supplied by The Public Catalogue Foundation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루이즈는 야심가이고 세속적 성공에 목말랐던 몽테스팡 남작과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둘 낳았습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없었습니다. 루이 14세는 루이즈를 잊지 못했고, 결국 몽테스팡 남작은 자신의 부인이 부정(不貞)을 저질렀다고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루이 14세는 당시 루이즈를 옹호하기는커녕 모른 척 했다고 하는군요. 1671년, 둘의 첫 만남에서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 루이즈는 이번엔 왕이 아닌 세상을 등지고 종교에 귀의하기로 합니다. 수녀원으로 도망치려던 그를 다시 루이 14세가 붙잡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루이즈는 결국 지옥 같은 3년을 보낸 뒤에야 몽테스팡 남작과 법적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파리의 수녀원에 들어갑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는 다수의 저작을 펴낸 작가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수녀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내용의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말년엔 루이 14세의 왕비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고, 두 여인은 화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루이즈의 행복한 시절은 아마도 궁에 들어가기 이전인 어린 시절 아니었을까요. 그가 유년을 보낸 루아르의 아담한 성(城)은 최근 부티크 호텔로 개장을 했습니다. 이름도 그대로 ‘샤토(城)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인 이곳은 오늘 공식 오픈을 하는데, 지난 8일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고위급 모임인 한불클럽ㆍ불한클럽 회원들을 특별히 손님으로 맞았습니다. 이 성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바로 매입을 결정했다는 미라 그레벤슈타인 대표는 “한국의 손님들을 제일 먼저 환영하게 되어 드 라 발리예르 공작부인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호텔 예약 사이트 등을 확인해보니 이미 대부분 공실이 없는 상태인 이 호텔은 루아르 지역의 새 명소가 될 전망입니다.

호텔이 된 샤토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의 룸 키는 왕가의 여성을 주제로 했다. 소품에도 큰 의미를 담았다. 루아르=전수진 기자

호텔이 된 샤토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의 룸 키는 왕가의 여성을 주제로 했다. 소품에도 큰 의미를 담았다. 루아르=전수진 기자

리셉션 데스크 정면에도,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에도, 미소를 지은 루이즈의 대형 초상화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레스토랑엔 루이즈와 아들딸 초상화도 걸려있는데,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다소 초라하게 걸려 있는 건 호텔 측의 의도인 듯도 하네요. 그레벤슈타인 대표는 “드 라 발리예르 공작부인은 루이 14세가 왕이어서가 아니라 그를 그저 한 남자로 사랑했기에 그의 마음을 온전히 갖지 못하게 되자 속세를 떠나기로 한 것”이라며 “그가 순수하게 행복했던 시절을 되살리고 싶어 이 호텔을 꾸렸다”고 소개했습니다. 루이즈는 루이 14세와 행복했던 때도 이곳에 종종 함께 머무르곤 했다고 합니다.

이곳 루아르 주엔 루이즈 드 라 발리예르의 성뿐 아니라 약 1000여개의 크고 작은 성이 운집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엔 프랑수아 1세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이 남아있는 앙부아즈 성도 있습니다. 앙부아즈 성의 성주로 일하고 있는 프레데릭 뒤 로랑은 외교관 출신인데요, 마침 주한 프랑스 대사인 필립 르포르와도 절친한 사이입니다. 한불클럽ㆍ불한클럽 멤버인 르포르 대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군요. 앙부아즈 성엔 한불클럽을 환영하기 위해 프랑스 삼색기 옆에 태극기까지 함께 게양하는 센스도 보였습니다. 로랑은 “한국에도 아름다운 고궁이 많다고 들었다”며 “앙부아즈 성과 자매결연을 추진해서 양국 문화 교류를 더 활발히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실무진 중 한 명은 “2018년 서울과 제주도에 가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고 왔다”며 “한국 분들도 앙부아즈에서 행복한 기억을 쌓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한불클럽을 환영하는 의미로 프랑스 앙부아즈 성에 게양된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 루아르=전수진 기자

한불클럽을 환영하는 의미로 프랑스 앙부아즈 성에 게양된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 루아르=전수진 기자

앙부아즈 성을 사랑했던 프랑수아 1세는 루이 14세보다 한 세기 앞선 인물인데, 다빈치와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투스카니 지역 출신인데, 생의 마지막은 프랑수아 1세의 호의와 우정으로 이곳 루아르 지역에서 보냈습니다. 다빈치도 일종의 '왕의 남자'였던 셈이죠. 그가 마지막을 보낸 클로 뤼세(Clos Lucé) 성엔 다빈치가 설계한 탱크부터 애용했던 화구까지, 볼거리가 다양했습니다. 가이드는 따로 필요 없습니다. 클로 뤼세 대표인 프랑수아 생 브리는 제게 한국어 브로슈어를 건네며 “다빈치에 특히 관심이 깊은 한국인들을 위해 공들여 제작했다”고 귀띔했죠.

앙부아즈 성의 성주인 프레데릭 뒤 로랑(오른쪽)과 절친한 사이인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루아르=전수진 기자

다빈치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클로 뤼세(Clos Lucé) 대표, 프랑수아 생 브리. 전수진 기자

인근엔 루아르 고성 투어의 빼어난 명소, 쉬농소(Chenonceau) 성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공주였던 카트린느 디 메디치가 프랑스에 시집와서 자주 머물렀던 곳입니다. 프랑스에 발레부터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문물을 전수한 주인공인 카트린느 드 메디치는 깐깐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쉬농소 성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궁의 긴 회랑은 그가 매주 2회씩 화려한 파티를 열었던 곳인데요. 이때 카트린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귀족들을 꼭 초청해서 여러 방법으로 곯려주었다고 하네요. 자신의 앞에선 뒷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 등을 내걸어, 뒷걸음질을 100번 이상 치게 하거나, 그러다 넘어지면 온 프랑스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15세기와 16세기 프랑스가 그대로 현대에 되살아나 문화 유산이 된 곳, 루아르. 한국에도 못지않은 스토리들이 있습니다. 마침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 바로 옆의 칠궁(七宮)엔 장희빈 등,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이 잠들어 있기도 하죠. 그 유산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요. 드 라 발리예르 공작부인과 프랑수아 1세, 디 메디치 공주에게 한 수 배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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