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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K클래식 스타] ‘왕벌의 비행’ 연주로 뜬 유튜브 스타, “1등만 뜨는 독재적 콩쿠르 도전 중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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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11면

SPECIAL REPORT 

임현정

임현정

지난 5월 프랑스 공영방송 3번 채널에선 다큐멘터리 ‘침묵의 소리’가 방송됐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사진)이 6년 전 출간한 동명의 책에 감동받은 스테판 하스켈 감독이 2019년부터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찍은 작품인데, 팬데믹 탓에 중단됐다가 올해 한국 촬영을 마무리해 완성한 ‘프랑스판 성공시대’다.

10년 전 클래식 명가 EMI 클래식스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음반이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아이튠스 클래식 차트 1위에 올랐을 정도니, 임현정은 원조 ‘K클래식 스타’다. 그런데 권위있는 콩쿠르 우승으로 뜨는 요즘 K클래식 스타들과 달리, 원조 ‘유튜브 스타’다. 2009년 벨기에의 작은 페스티벌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이 유튜브에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왕벌’로 핫해진 것이다.

열두 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최고스타 조성진이 나온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최연소 입학, 3년 만에 조기졸업한 실력자이지만, 콩쿠르와는 거리두기를 해 왔다. 권위있는 콩쿠르라는 관문 없이도 인지도를 얻어 세계를 돌며 스스로 기획한 무대에서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있다. 2018년엔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국제 콩쿠르에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박차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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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다 팬데믹을 계기로 한국 정착을 택한 그는 지난 7월부터 ‘신청곡 콘서트’를 열고 있다. 80석 규모 야마하 홀에서 독주회를 10차례 이상 열었는데, 10~20만원인 티켓이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관객들로 늘 전석매진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5시엔 즉석에서 신청곡을 받아 드뷔시, 라벨,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리스트 등 클래식 명곡 12곡을 거침없이 암보로 연주했다. 이 공연을 보러 팬데믹 이후 처음 외국에 왔다는 일본인 이카리 요시씨는 “10년째 임현정의 팬으로 파리, 더블린 등 유럽 공연도 늘 보러갔었다. 『침묵의 소리』를 읽으려 프랑스어도 공부했다”며 팬심을 드러냈다. 40대 여성 감도이씨는 “직전 공연에도 왔었는데 너무 좋아서 중학생 딸을 조퇴시키고 데려왔다. 이 에너지를 느껴보게 하려고”라고 말했다.

공연 후 만난 임씨는 “열두살부터 외국에 살다보니 간절한 꿈이 한국인들과 음악을 공유하는 거였는데, 팬데믹으로 스위스 집을 처분하게 되면서 계획이 당겨졌다”면서 “스위스의 매니저와 5년 전부터 공연 기획을 해온 시스템대로 한국에 기획사를 차렸다. 11월엔 2주간 스위스, 프랑스 투어를 간다”고 했다.

독특한 콘서트다.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열었던 국내최초 오르간 하프시코드 피아노 독주회도 전석 매진이었고 상반기 내내 바흐 평균율 전국 투어를 돌았다. 부전공한 지휘를 너무 좋아해서 파리 음악원 동기들 중심으로 인터스텔라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관현악 공연도 하고 있다. 서울시향 차석인 허상미 악장 등 24명 멤버 실력이 엄청나다. 실내악 공연도 종종 열고 있다.”
평일 낮 시간에 다양한 관객이 온다.
“SNS 말고는 전혀 홍보하지 않지만 입소문으로 찾아온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인데, 정말 그런 분들이 많이 오신다. 클래식을 안 듣지만 내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즐기고 갈수 있게 소통하며 연주한다.”
콩쿠르를 굳이 외면한 이유는.
“어려서부터 불공정을 목격했지만 19살에 작은 콩쿠르에 나가 우승했다. 300명 모여 1등만 알아주고 299명은 속상한 콩쿠르는 너무 독재적이라 생각해 도전을 멈췄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다면 음악이 깊어지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상심해 음악을 포기한 친구도 있다. 콩쿠르가 아니면 절대 음악인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 존재를 드러낼 길이 다양해야 된다. 나는 부귀영화가 아니라 음악의 폭을 넓히는 목표를 잡고 30살 전에 웬만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다 암보했다. 암보했기에 내 머리와 손에 다 들어있고, 그래서 이런 즉석 신청곡 콘서트가 가능하다.”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데.
“파리음악원에서 연극, 영화음악을 같이 배우고 지휘를 부전공했다. 예술이 영혼의 표현인데 유니크함이 없다면 AI가 대체하면 될거다. 스승이 치라는 대로만 친다면 무대 위 허수아비 아닌가. 내가 만난 교수님들은 음악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응원해줬다. 파리음악원의 바르다 교수님은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쇼팽 프렐류드를 함께 탐구했는데, 너의 음악적 DNA를 건드리지 않는다면서 통제하지 않았다.”
음악인으로서의 성공이란 뭘까.
“콩쿠르 우승, 유명 홀, 유명 오케스트라 협연이 성공일까. 호로비츠가 어느 홀에서 공연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음악을 했느냐만 남는다. 초청에 의존하지 않고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하는 삶을 살려고 아티스트 독립을 했고, 후배들도 다양한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예고생들을 위한 영아티스트 페스티벌도 계획 중이고,  청중이 관람료를 내고 학생은 무료인 마스터클래스도 연다. 음악하는 학생은 많은데 무대가 적으니 사회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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