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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K클래식 스타] 스타 음악가 국내 귀환 봇물, 차세대 K클래식 진화 이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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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12면

SPECIAL REPORT

지난 5월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한 피아니스트 김선욱. [사진 빈체로]

지난 5월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한 피아니스트 김선욱. [사진 빈체로]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월간 ‘객석’의 올해 4월호에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형)과 첼리스트 김두민이 표지를 장식했다. 1970년대 생인 두 음악가가 지난 봄,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로 나란히 부임한 게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무엘 윤은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개막 공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주역을 맡으며 화제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독일 쾰른 오페라하우스 종신 성악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김두민은 2004년부터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재직 중이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명문 대학들에 스타 음악가들의 임용 소식이 부지런히 들려오고 있다. 그간 해외 음악계에서 ‘K클래식’의 ‘K’ 마크를 빛내 왔던 이들의 귀환이자, 그들의 노하우가 국내 음악 교육의 비료가 되는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계기로 국내 음악교육계와 교단의 성향도 점차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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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스승 모시기’에서 시작된 K클래식

2019년 BBC 프롬스에 데뷔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 ⓒ BBC_Chris Christodoulou]

2019년 BBC 프롬스에 데뷔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 ⓒ BBC_Chris Christodoulou]

K클래식의 저력을 낳은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국내 음악교육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3년 국립예술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한국예술종합학교다. 이강숙(1936~2020) 초대 총장의 우선 조건은 ‘좋은 스승 모시기’였다. 사실 학교 설립 전이던 1980년대는 음악교육 체질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나오던 때였다. 월간 ‘객석’ 1984년 9월호는 ‘음악원 탄생은 필요한가?’라는 대특집을 게재했는데, ‘음악원’은 기존의 음악대학과 체질이 완전히 다른 전문화된 음악교육 전문기관을 뜻한다.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1990년에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립예술학교 설립계획을 공포했다. 문학평론가 출신의 이어령(1934~2022)이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1990~1991)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대통령령 제13528호)이 제정되었고, 뒤를 이은 이수정 장관(1991~1993)이 이 영(令)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이강숙은 이를 위한 자문위원 중 한명이었다. 교육적 청사진 그리기와 교수진 추천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이강숙은 이내 곧 장관의 눈에 들었고, 학교 설립이 추진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수진이었다. 이강숙은 2015년 출간한 저서 『음악 선생님을 위하여』에서 그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의 부제는 ‘음악과 교육에 관한 시대를 초월하는 근원적 질문과 답변’이다.

“말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행사되는데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왜 그렇지 못한가. (···)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모방 대상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원래에 있는 능력이고, 특정 언어 구사 능력은 원래에 있는 능력 덕분으로 얻어진 개발된 능력이라고 했는데 개발된 능력이라는 것은 모방에 의해서 얻게 된다는 것이다. (···) 모방 대상이 이렇게 일정치 않으니 소질 개발이 일정해질 이유가 없다.”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우승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임윤찬과 그의 스승 손민수 한예종 교수(오른쪽). [뉴시스]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우승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임윤찬과 그의 스승 손민수 한예종 교수(오른쪽). [뉴시스]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모방 대상’이란 교수들이다. 그는 2016년 필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뛰어난 교수진’이 곧 ‘뛰어난 커리큘럼’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은 어떤 문화권에 있느냐에 따라 ‘저절로’ 배우는 것과 ‘억지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저절로 배우는 것은 억지로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고 그 효과도 크죠. 그래서 그 학교의 ‘히든 커리큘럼’이 무엇이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예종의 히든 커리큘럼은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하는 교수들’이고,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그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믿음 하에 이강숙은 당대 최고의 연주 활동을 보여주고 있던 음악가들을 교수진으로 영입했다. 스승은 제자라는 화살을 쏘아 올리는 활이라 하지 않던가. 이강숙 사단은 그 어떤 화살도 높이 쏘아 올릴 수 있는 강한 활을 지닌 궁예 부대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다. 개교 직후 1994년 음악원 교수로 부임했던 그는 당시 촉망받는 30대 초반의 피아니스트였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재학 시절인 1985년 로베르 카사드쉬 콩쿠르 우승과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는 귀국 후 활발한 연주 활동과 더불어 교육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에 그의 연주활동은 빛을 발했다. 해외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내한 협연과 독주회가 연일 취소될 때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김대진이었다.

그의 활동과 존재는 교육에서도 빛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0년대에 새로운 예술학교라는 이점으로 주목받았다면, 2000년대부터는 스타급 교수진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이 모여 있는 유럽에서도 음악학도들에게는 난제라는 현지 국제 콩쿠르에서 재학생들이 입상 트로피를 거머쥐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 루빈슈타인 콩쿠르에서 19세의 손열음이 3위에 입상했고, 2006년 18세의 김선욱이 영국 리즈 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이자 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전 세대와 달리 해외 유학을 거치지 않고, 국내 교육만으로 다져진 영재들이었다. 손열음과 김선욱의 기사마다 스승 김대진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스타 피아니스트의 영예에 스타 교육자라는 명예가 얹어진 순간이었다.

2011년 벨기에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1995년만 하더라도 1차 예선 진출자 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2011년에 한국인이 22명이나 진출하자 벨기에 국영방송은 전문가들을 한국에 파견했고,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라는 다큐멘터리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교수들의 교육 비법을 담았다.

임윤찬 키운 손민수, 김대진에게 배워

지난 1월 생전의 이어령 전 장관과 만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오른쪽).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지난 1월 생전의 이어령 전 장관과 만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오른쪽).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K클래식의 전환점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콩쿠르에 입상하고, 현지에서 인정받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음악가들이 국내 교육계로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귀환’이 보여줄 연주 활동은 물론 교육계로도 에너지의 물꼬가 트이며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오디세이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음악학도들의 유학 목적이 바뀌고 있어 이러한 흐름의 유입이 더욱 기대된다. 외국 명문 음악교육기관에서 학위 취득이 우선이던 1980~1990년대와 달리, 2000년대는 그 목적이 콩쿠르 출전과 입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극장 입단을 주목적으로 하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활동하고 국내 교단에 서게 된 이들은 현장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다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수할 수 있다. 앞서 거론한 첼리스트 김두민은 물론,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역임 후 연세대에 부임한 플루티스트 조성현, 레겐스부르크 필하모닉·핀란드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부수석 역임 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트럼페터 성재창,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수석 활동 중 한양대 교수로 부임한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관악기 분야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에 비해 교육적 환경이 부족했는데, 이들의 활약이 이를 메울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콩쿠르 입상 후 독주와 협연의 경력으로 무장한 음악가들도 제자 양성을 위한 텃밭으로 들어서고 있다. 하노버 요아힘·파가니니·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으로 빛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서울대 교수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를 비롯하여 국제 콩쿠르에

1위로 입상한 다수의 경력으로 ‘콩쿠르 퀸’이라는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은 이화여대 교수로 자리 잡았다. 최근 경희대에는 2014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소프라노 황수미, 뮌헨 ARD(에이알디)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임용되어 화제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출신의 피아니스트 임효선과 김태형이 교단에 정착한 상황 하에 ‘젊은 교수진’의 퍼즐이 맞춰진 것이다. 이외 피아니스트 안종도(연세대·롱티보 크레스팽 콩쿠르), 소프라노 캐슬린 킴(한양대·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활동), 소프라노 양귀비(이화여대·독일 켄니츠 오페라극장 전속) 등도 꼽을 수 있겠다.

연일 화제를 낳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스승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부소니·클리블랜드·힐튼 헤드·호넨스·루빈스타인 등 저명한 콩쿠르에 입상한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미시간 주립대에서 교육 활동을 병행하다가 2015년에 모교에서 후학 양성을 시작했다. 손민수는 김대진을 사사했다.

세계 음악계를 놀래킨 K클래식의 주역들은 국내 음악계에도 새로운 변화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K클래식’의 역사와 현주소를 다시 쓰고 있는 주역들이 이른바 ‘포스트-K클래식’의 청사진을 그리는 재원이 되고 있는 지금이다. 주역들의 귀환과 이들을 통해 배출될 다음 세대의 연결 고리. ‘K클래식 오디세이’는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월간 객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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