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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병? 사진화? 누가 쓰는 말일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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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호 21면

국어사전 독립선언

국어사전 독립선언

국어사전 독립선언
박일환 지음
섬앤섬

‘지난 8년간 500명의 인력과 112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표준국어대사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중략) 그러나 수록 표제어가 많고 약간의 어원설명이 곁들여진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사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이 사전은 시중 국어사전의 고질적 병폐인 용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99년 한글날을 앞두고 보도된 기사 일부다. 민간 국어사전밖에 없던 시절에 『표준국어대사전』은 ‘국가가 직접 편찬한 최초의 국어사전’이자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만든 사전이다. 그런데 출간 당시부터 “사전의 생명과도 같은 용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왜 용례가 부족할까. 이 책 『국어사전 독립선언』은 그 이유 중의 하나를 짐작하게 한다. 우리는 쓰지 않지만 일본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번역만 해서 국어사전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경우다.

몇몇 사례를 보자. ‘사진에 찍힌 형상’이란 뜻의 ‘사진화(寫眞畵)’. 국어사전에는 있고 일본어사전에는 없다. 이 단어는 일본의 ‘현대미술용어사전’에 나온다. ‘사진을 본뜬 회화’ 또는 ‘회화를 촬영한 사진’이다. ‘주로 학생들 사이에 많이 생기거나 전염하는 병’이라는 뜻의 ‘학교병(學校病)’도 국어사전에 있다. 이 낯선 단어는 일본 학교보건법 용어다. ‘조각에서, 여러 가지 나뭇조각으로 맞추어 만들되 한 나무로 만든 것같이 하는 기법’이라는 뜻의 ‘기본법(奇本法)’도 국어사전에 있다. 사연은 황당하다. 저자는 일본의 불상 조각 용어 ‘기목법(奇木法)’을 옮길 때 ‘목(木)’을 ‘본(本)’으로 잘못 쓴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은 이밖에 일제 강점기에 잠시 쓰인 말을 별다른 설명 없이 지금도 쓰는 말인양 풀이해 놓은 것 등의 문제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지적한다. 저자는 스스로 언어순혈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저자는 “최소한 풀이에서 일본식 용어라는 사실을 밝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저자는 앞서 『국어사전이 품지 못한 말들』, 『국어사전 혼내는 책』,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등 비슷한 결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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