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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민주당, 대법원도 마비시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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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1988년 현행 헌법 아래 국회에 임명동의안이 제출된 대법관 후보자는 80여 명이다. 두 명을 빼곤 모두 ‘후보자’ 꼬리표를 뗐다.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의 3배수 추천자 중 한 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어느 정도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정하는’ 구조여서다. 국회는 추인하는 게 관례였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인준 안갯속 #민주당 강경파 "쉽게 해주면 안 돼" #재판 지연 피해…이제 결론내야

 그중엔 박시환 전 대법관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막전막후에 대한 『대법원, 이의있습니다』에 따르면, 2004년 탄핵 재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대리인이었던 그는 그해 가을 사법연수원 동기인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의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이 박 변호사를 만나고 싶어 한다.” 청와대로 들어간 그에게 노 대통령이 말했다. “박 변호사, 사법부에 변화가 필요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이끌 후보군을 정리해 달라.”

 판사 출신인 그는 동료·후배 의견을 모아 ‘대법원(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에 관한 의견’이란 문건을 작성했다. 거기서 대법원장 후보로 이용훈 등, 대법관·헌법재판관 후보로 이홍훈(사시 14회)·전수안(18회)·김지형(21회)·문재인(22회) 등을 거명했다. 그러곤 “강한 보수성이 지배하는 사법부, 보수적인 대법관 일색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그 상태대로 정치 기구화하는 것은 극히 우려할 현상”이라며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더라도 과감한’ 변화를 주장했다.

 노 대통령과 박시환이 술잔을 기울이진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일했다. 그러곤 얼마 안 돼 청와대의 희망에 따라 그는 대법관이 됐다. 어쩌면 대법원장도 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지만 그가 거절했다니 말이다(『두 얼굴의 법원』).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가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가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주당 정권은 강제 징용 재판 과정에서 청와대와 외교부, 대법원이 교감한 걸 사법 농단으로 몰았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이자 결과적으로 대법관이 된 인물이 함께 대법원 구성을 논의한 걸 어떻게 봐야 하나.

 도입부가 길었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8월 인사청문 절차를 마쳤는데도 두 달이 되도록 인준 표결 얘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과 술잔을 기울이는 친분과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의 해고를 인정한 판결을 문제 삼으며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야당 인사청문위원이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달리 본다. 12일 통화하며 “오 후보자가 역대 후보에 비해 나쁜 건가”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상대적 (흠결의) 무게감으로 따져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임명한 후보들과 공정하게 비교해 봐야 한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더 가까운 사람도 임명하지 않았나. (민주당이 보기에) 진짜 부적격하다면 본회의장에서 떳떳하게 공개 부결시키고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되는데 이렇게 뭉개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

 실제 대통령과의 친분이라고 하면 더한 박시환도 20일 만에 인준됐다. 본인이 위장 전입했음에도 위장전입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논란이 된 김상환도 81일 만에 꼬리표를 뗐다.

 들리는 바론 민주당의 일부 강경 그룹이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하는 대법관 인사인데 쉽게 해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여서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관 14명 중 13명(대법원장 포함)이 교체되는 걸 의식한 기선제압용이란 것이다. 보수판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불안이다. 169석이니 비토할 힘도 있고 말이다.

 원래 ‘검사는 불러서 조지고 판사는 미뤄서 조진다’는 말이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부작위(不作爲)’ 전술로 국민이 ‘미뤄 조짐’을 당하게 됐다. 대법원이 연간 3만8000여 건을 처리한다는데 대법관 한 명이 부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연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이미 김명수 대법원장 아래 재판 지연은 악명 높은 상황이다.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다. 완력도 가려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