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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다가온 엔데믹 시대, 관광 경쟁력 시험대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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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다시 불붙은 해외 여행객 유치전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지난 7일 오후 2시 15분쯤 서울 명동 중앙로. 삼삼오오 짝을 지은 외국 관광객이 적잖게 눈에 들어왔다. 퇴근 전이라 다소 한산한 거리는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다. 대만과 동남아, 남미의 단체 여행객, 유럽에서 온 부부, 사우디아라비아 항공사 남자 승무원 등등. 명동은 작은 지구촌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1일 입국자에 대한 PCR 검사 의무 해제로 코로나19 관련 빗장이 다 풀리면서다. 아이 한 1명과 함께 온 30대 에콰도르인 부부는 “휴가를 받아 왔다”며 “한 달간 한국 문화를 탐구하고 즐기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대로변 상가나 음식점은 숨통을 트는 분위기였다. 뒷골목은 아직 휑했다.

길 가운데의 자몽주스 노점 주인은 “외국 관광객은 8월부터 늘기 시작해 10월 들어 더 많아졌지만 코로나19 전에 비하면 30~40% 정도”라며 “지금은 명동을 휘젓던 중국 관광객이 거의 없고, 서양 쪽 사람이 많다”고 했다. 중국은 재입국자에 대한 격리 조치 등으로 해외 관광이 꽁꽁 얼어붙었다.

미국 5개년, 프랑스 10개년 계획
세계 1위 경쟁 속 친환경에 초점

일, 관광입국 내걸고 한국 넘어서
“2030년 6000만명 유치” 총력전

세계 27위 한국 중장기 비전 없어
무역입국 DNA로 관광대국 다져야

활기 찾은 명동, 한산한 남대문시장

명동과 전철 한 정거장 거리의 남대문시장은 외국인이 뜸했다. 이곳 상점 주인들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완화를 학수고대했다. 올 1~8월 중국 관광객은 전체 외국 관광객의 8.9%인 12만여 명으로, 미국(28만여 명·20.3%)에 이어 2위였다. 코로나 전인 2019년 같은 기간엔 389여만 명(전체 34%)으로 압도적 1위였던 것과는 딴판이다. (한국관광데이터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제선 항공도 생기가 돌고 있다. 5일 오후 3시 10분쯤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1층의 도착 로비. 일본 나리타 출발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하는 내국인 행렬에 일본인이 적잖게 섞여 있었다. 도쿄 거주 40대 회사원인 가게 도모코씨는 “친구와 함께 3년 만에 부산을 찾아 가슴이 설렌다”며 “6일간 머무르면서 부산국제영화제(10월 5~14일) 등을 둘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해공항 정차영 운영계획부 주임은 “10월 기준 국제선 운항 계획은 10개국 20개 노선 주(週) 304회(출발·도착 포함)로 코로나 전의 절반 수준이지만, 이용객이 7월(8만4000여 명)부터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대구공항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10월 기준 국제선 운항 계획은 4개국 주 10회로, 기존의 옌지·다낭·방콕 노선에 후쿠오카가 추가됐다. 이용객은 올 1~4월 한 명도 없었지만 8월엔 1만 명에 육박했다. (에어포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코로나 팬데믹의 엔데믹(풍토병화) 움직임으로 지구촌이 쇄국에서 개국으로 선회하고 있다. 덩달아 해외 관광도 본궤도에 오르는 모양새다. 한국은 코로나로 외국 관광객 입국(인바운드)이 곤두박질쳤다. 2019년 1750만 명으로 역대 최다(세계 27위)를 기록한 후 2020년 251만 명, 지난해 96만 명을 기록했다. 올 들어선 8월까지 138만 명으로, 6·7·8월 인바운드는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3배였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코로나 입국 제한이 풀린 만큼 인바운드는 가파른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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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인바운도 관광도 엇비슷한 흐름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조사 결과, 올 1~7월의 인바운드는 4억740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억7500만 명)의 2.7배였다.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7% 수준까지 회복했다. 지역별로는 유럽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올 1~7월 세계 인바운드의 65%인 3억900만 명을 유치했다. 주라브 폴롤리카슈빌리 UNWTO 사무총장은 “국제 관광은 지정학과 경제의 도전 요인이 있지만 순조롭게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보도자료)

포스트 코로나 전략 본격화

해외 관광 본격화로 각국의 인바운드 유치전은 다시 불붙었다. 우리의 관광 경쟁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각국이 지난 2년여의 관광 동면기에 어떤 전략을 짜고 준비를 해왔는지 실력은 조만간 진실의 순간을 맞을 전망이다. 그새 관광 대국들이 내놓은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들여다보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미국 정부는 2022~2027년의 5개년 계획인 ‘국가 여행·관광 전략 2022’를 지난 6월 공표했다. 주무 부서인 상무부 외에 국토안보부와 노동부·국무부가 함께 인바운드 유치 로드맵을 마련했다. 목표는 야심 차다. 2019년 7940만 명(세계 3위)인 인바운드와 2394억 달러(약 343조원)인 경제 창출 효과를 2027년까지 각각 9000만 명과 279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코로나 전 관광 수입의 압도적 1위는 지켜나가면서 인바운드를 세계 1위인 프랑스 수준(2019년 9090만 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민관 합동의 총력 태세를 통해서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2년을 깁는 차원을 넘어 세계의 관광 패권까지 넘보는 셈이다.

새 전략의 축은 4개다. ▶해외 관광 프로모션 강화와 시골 지역에 대한 마케팅 확대 ▶여행 서비스에 대한 장벽 완화와 안전, 효율의 여행 환경 조성 ▶서비스 낙후 지역 등 대상 다양하고 포용적인 관광 ▶기후 변화 완화 기여 등 지속 가능한 관광이 그것이다. 기존의 관광 홍보 외에 다양성(지방 유치)과 지속 가능성(탄소배출 완화)을 새 전략으로 삼은 점이 눈에 띈다. 하와이주가 산림 보전이나 해안의 청소 자원봉사를 하는 관광객에게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 일환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관광 변혁의 10년 로드맵을 담은 ‘행선지 프랑스’ 전략을 선보였다. 관광 대국다운 발 빠른 대응이다. 30년이 넘은 인바운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조류인 지속 가능한 관광 분야에서도 세계를 이끌겠다는 것이 요체다. 구체적으론 자전거 여행 세계 1위 등을 들었다. 프랑스는 총리 주재로 6개월마다 관계 각료, 지자체 수장, 업계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부처 간 관광협의회를 개최한다.

일본은 11일부터 68개국에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인바운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인바운드는 2019년 3188만 명(관광 수입 461억 달러)으로 역대 최다였다가 코로나로 괴멸적 타격을 받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내각 때 내건 2030년 인바운드 6000만 명 목표를 지금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의 인바운드는 2014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뒤졌다. 그해 한국 1420만 명, 일본 1341만 명이었지만 2015년엔 한국 1323만 명, 일본 1974만 명으로 역전했다. 이후 2019년까지 양국 간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한일 역전의 계기는 2014년 아베 전 총리가 인바운드 유치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아베는 이듬해 ‘내일의 일본을 뒷받침하는 관광비전 구상회의’를 발족하고 의장으로 관광입국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러면서 인바운드를 성장 전략의 한 축이자 지방 소멸의 방파제로 자리매김했다. 외국 관광객을 뜨내기가 아닌 지방회생의 원군인 ‘관계 인구’로 삼은 지자체가 5곳이나 나왔다. 당시 관방장관이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지난달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당시 일본의 인바운드는 840만 명 정도, 한국은 1000만 명을 넘었다. 어째서 이웃 나라에 지고 있는가. 이것이 내 생각의 기본이었다”고 관광 드라이브의 배경을 밝혔다.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

관광 컨트롤타워 설치 서둘러야

우리 정부는 당시 이런 내막을 알고 있었을까. 우리의 인바운드가 일본에 추월당한 뒤 절반 가까운 수준이 되도록 과거 정부는 제대로 된 중장기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관광의 실질적 컨트롤타워도 없었고, 그나마 2017년 설치한 총리 위원장의 관광 진흥 국가관광전략회의는 이름뿐인 협의체로 전락했다. 지방 정부는 관광의 점을 선으로, 선을 면으로 잇는 광역 협력에 취약점을 드러냈다. 일회성 이벤트가 관광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정비를 압도했다.

관광은 부가가치도, 성장 잠재력도 크다. 2019년 기준 인바운드 관광의 전체 수출 대비 비중은 미국 9.5%, 프랑스 8.2%, 일본 5.4%, 한국 4.0%다. (UNWTO) 경제 규모가 작은 그리스·태국·크로아티아·포르투갈 등엔 관광이 생명줄이다. 경기 침체와 지방 소멸 시대에 외국 관광객을 소비자와 제2의 인구로 삼는 인식과 전략이 절실하다.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다. 인바운드를 통한 문화와 매력 발신의 승수효과는 헤아리기 어렵다.

마침 K드라마·팝의 한국시대는 활짝 열렸다. 책임 소재가 분명하도록 관광조직을 정비하고, 대통령 주재 분기별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관광 전략도 함께 다루면 어떨까 싶다. 관광의 뉴프런티어는 지방이고, 지자체도 인바운드 유치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일본 사례는 정상이 전면에 나설 때 대반전이 이뤄진다는 점을 웅변한다. 무역입국의 성공 신화를 일군 우리가 관광 대국이 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엔데믹 개국을 관광 대국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