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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핵우산 신뢰성 확보가 우선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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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독자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 논의 분출

신중한 논의 필요, 정쟁 소재 삼아선 곤란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함에 따라 우리 안보가 전례 없이 엄중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음을 전제로 세운 대북정책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놓고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치권 안팎과 일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독자 핵 무장론에서부터 전술핵 재배치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모델을 변용한 핵 공유론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핵에 대항하는 길은 핵뿐이란 점에서 각각의 주장에는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과 험난한 과정, 간단치 않을 여파를 생각하면 칼로 무 베듯 간단하게 결론지을 일이 아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파기” 등의 주장이 여당 지도부의 입에서 나오고 야당이 반박하면서 정쟁의 소재가 되고 국론 분열상을 드러내는 것은 북한만 이롭게 할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로 비핵화공동선언이 깨진 현실과, 한국 정부가 공식 파기 선언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핵 무장이나 핵 재배치는 한국 정부의 의지나 독자적 능력만으로 실행할 수 없거나, 어마어마한 후과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옵션에 대한 검토는 물밑에서 정밀하게 이뤄지는 것이 옳다. 여론에 편승한 정치 공방이나 인기 정책, 감정적 대응으로 다룰 일이 아니며 책임있는 당국자나 정치 지도자는 정제된 발언을 해야 한다.

그보다 우선적으로 정부가 할 일이 있다. 확장 억제와 핵우산 공약의 실질적 가동을 확고하게 보장받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에 미국이 핵 확전 등 자국에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펼쳐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독자 핵 무장론의 출발점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사시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조목조목 따져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미리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 차관급(외교+국방) 확장억제협의체가 열리긴 했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다.

유사시 핵 자산 배치 등 최고 수준의 확장 억제 가동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파기와 군비 경쟁의 촉발, 핵 도미노 야기 등 논란을 비켜나가면서도 핵우산 공약의 신뢰성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핵 위협에 직면한 한반도 안보 상황은 단 한 차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서 잘못하면 영원히 핵을 이고 사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만반의 대응 태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안보 전략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제 궤도를 이탈해 국론 분열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