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데자뷔…신용등급 강등 사태 닥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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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4일 강원도 레고랜드 개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 어음은 2020년 11월 발행됐을 땐 최고 등급(A1)의 신용 등급을 받았다. 발행사(아이원제일차)가 투자금을 못 갚아도 강원도가 대신 갚아주는 지급보증 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강원도가 돌연 지급 보증을 거부하면서 신용등급이 ‘C(채무 불이행 위험 매우 높음)’로 강등됐고, 5일 만에 최하 등급인 ‘D(상환 불능)’로 추락했다.

#스위스 2위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 주가가 신용 위험 부각으로 지난 3일(현지시간) 장 중 한때 10% 넘게 폭락했다. 부진한 실적 속에 최고경영자(CEO) 울리히 코너가 자본 수혈 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투자자 불안이 커진 것이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당장 신용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당분간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최근의 이런 국내외 사건들로 기업 신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고환율에 원자잿값·금융비용 상승 등으로 기업 실적까지 악화하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발생한 무더기 등급 강등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회사채 투자 심리 위축으로 기업의 ‘돈 줄’이 마르고 있지만, 현재의 신용등급이 이러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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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채권평가사 본드웹에 따르면 지난 11일 국고채(3년물)와 회사채(AA-급·3년물) 신용 스프레드는 1.111%P로 금융위기 직후였던 2010년 1월 14일(1.12%포인트)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 스프레드는 국고채와 회사채 사이 금리 격차로 이 수치가 커질수록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의미다.

시장이 느끼는 ‘회사채 리스크’가 커지고 있지만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할 신용 등급은 현재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금까지 20개 기업의 회사채 신용 등급이 도리어 상향 조정됐다. 하향 조정된 기업은 13개에 불과했다. NICE신용평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신용평가사 3곳 중 한국신용평가만 등급을 내린 기업이 올린 기업보다 많은 정도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는 신평사의 등급 평가가 과거 재무 실적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수출 실적이 양호했고 증시 활황으로 기업공개(IPO) 등 자본 확충이 활발했던 지난해의 분위기가 등급에 반영된 것이다. 최재헌 한기평 전문위원은 보고서에서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업황 회복으로 영업실적이 개선된 업체와 SK바이오사이언스·두산에너빌리티 등 대규모 자본 확충이 이뤄진 업체 중심으로 신용등급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등급이 악화한 기업 실적과 침체한 자금 조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올해 4분기 이후에는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172곳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총합은 50조2036억원으로 1개월 전(54조6719억원)보다 8.2% 줄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업 경쟁력이 낮고 부채 부담이 큰 기업의 신용 위험이 특히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 9월 당시 연간 등급 상·하향 배율(한기평 기준)은 15배로 20년 내 가장 높았다. 등급이 오른 기업이 내린 기업보다 15배 많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금융위기 1년 만에 이 수치는 0.3배로 급락했다. 경남기업·풍림산업 등 금융위기 파고를 넘지 못한 기업 22곳의 신용도가 무더기로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12일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기업의 유동성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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