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훈 퇴근 뒤 이대준씨 사살"…감사원 밝힌 文정부 '월북속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8월 16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 검찰 압수수색을 지켜본 뒤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8월 16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 검찰 압수수색을 지켜본 뒤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이 13일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씨와 관련한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 사건 당시 5개 기관(안보실·국방부·통일부·국정원·해경) 소속 20명에 대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최근 서면 조사 요구를 거부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 관해선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다는 이유로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

“위기컨트롤타워 작동 안해”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월북을 단정할 수 없는 월북 의사 표명 첩보와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을 속단했다”며 “국가 위기관리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감사원이 배포한 20여쪽의 보도자료엔 2020년 9월 이씨가 서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에 사살돼 소각되는 과정에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국방부와 통일부, 해경이 조직적으로 관련 사실을 은폐하거나 누락하고, 수십 건의 첩보를 삭제 또는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조사 결과가 담겨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씨는 ‘자진 월북’을 했다는 문재인 정부의 발표와 달리,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을 당시 처음에는 자진 월북 의사를 언급하지 않거나 왜 북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다 북한군이 계속 캐묻자 뒤늦게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

11일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열린 2022년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유병호 사무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11일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열린 2022년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유병호 사무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대준씨, 北캐묻자 뒤늦게 월북 의사 표명 

감사원은 당시 정부의 대처가 초동 단계에서부터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조사했다. 이씨에 대한 최초 실종신고는 2020년 9월 21일 오후 12시 51분경 해경에 접수됐다. 국방부는 다음날인 22일 오후 5시 18분경 안보실에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했다. 당시 북한은 코로나19 유입을 막으려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을 이유불문 사살한다는 긴급 포고문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안보실은 주관부처인 통일부를 제외한 채 해경에만 상황을 전파했다. 이씨가 실종된지 30여시간이 넘은 상태였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에 근거가 되는 ‘최초상황평가회의’를 실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를 한 뒤,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주요 간부들은 19시 30분경 퇴근했다. 그리고 약 2시간 뒤 이씨는 북한군에 사살돼 소각됐고 국정원은 안보실에 관련 첩보를 보고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초동 대처 과정에서 국방부와 통일부, 해경 모두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이 이씨를 구조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 속에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검토하지 않았다. 통일부 역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해경은 이씨의 발견 정황을 보고받고도 “정보가 보안상황”이란 안보실의 지시에, 이씨의 발견 위치 등 수색에 필요한 추가 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인근 해역만 살펴봤다.

지난 2020년 10월 윤성현 당시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오른쪽)이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20년 10월 윤성현 당시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오른쪽)이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감사원 “국방부, 국정원 첩보 수십건 삭제”

미흡한 초동 대처 뒤에는 은폐와 조작이 이뤄졌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씨가 사살됐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안보실을 포함한 정부 기관들은 자신들의 미흡한 대처 정황이 담긴 문건을 조작하거나 첩보를 삭제했다. 안보실은 23일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며 ‘보안 유지’를 강조했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국가안보일일상황보고서’에 이씨의 피살, 소각사실을 누락했다. 해경은 피살 정보를 전달 받은 뒤에도 마치 이씨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가짜 수색 작업을 벌였다.

국방부는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 당시 서욱 전 장관 지시에 따라 실무자를 출근시켜 밈스(MIMS·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관련 첩보보고서 60건을 삭제했다. 대북전통문에는 피살 사실을 알고도 마치 이씨가 실종 상태인 것처럼 기재해 북한에 전달했다.

국정원 역시 같은 날 새벽 46건의 첩보보고서를 삭제했다. 통일부는 24일 장관 주재회의에서 사건 최초 인지 시점을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정원으로부터 최초 전달받은 22일 18시경이 아닌 이씨가 피살된 직후인 23일 01시로 하기로 했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국회와 언론에 대응자료를 제출했다.

당시 해경청장 “나는 안본 걸로 할게”

감사원은 정부가 이씨를 발견하고도 구조하지 못한 상황에서 안보실이 주도해 소위 여권이 주장하는 전 정부의 ‘월북 몰이’가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국방부와 국정원 모두 최초 보고에선 “월북 가능성이 낮다”거나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보실은 23일 이씨의 소각 뒤 관계장관회의에서 국방부로부터 ‘자진 월북’ 첩보를 보고받은 뒤 국방부와 해경에 ‘자진 월북’을 기초로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며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 장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6일 감사원 정문 앞에서 감사원 부당 감사 비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권칠승·황희·한정애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장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6일 감사원 정문 앞에서 감사원 부당 감사 비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권칠승·황희·한정애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그 과정에서 이씨의 ‘월북’과 다른 근거와 증거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국방부는 이씨의 월북 근거로 ▶남한 구명조끼 착용 ▶CCTV사각지역 슬리퍼 ▶발견 당시 소형부유물 의지 ▶월북의사 표명을 제시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당시 이씨가 입고있던 구명조끼는 이씨가 타던 어업지도선엔 없던 한자가 쓰여진 구명조끼였고, CCTV는 고장나 있었으며, 슬리퍼의 소유는 불분명했고 소형 부유물 역시 어업지도선 것의 아닌 해상 불상물로 추정됐다. 이씨의 월북 의사는 앞서 밝힌대로 북한군에 의해 강요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감사원은 판단했다.

해경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감사원의 조사 결과다. 당시 수사팀에서 발표를 거부하고 월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보고에도 해경 고위층은 “월북 판단”으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에 조사를 받은 해경 관계자들은 당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다른 가능성은 말이 안된다”고 하거나 김씨의 구명조끼에 한자가 적혀있단 보고에도 “나는 안본 걸로 할 게”라는 발언을 했다고 진술했다. 해경은 표류예측 조사 과정에서도 더미실험과 수영실험,표류예측 분석에서 ‘월북’과 다른 조사 내용들을 왜곡하고 제외시켰다.

감사원은 국방부가 이씨의 시신 소각 사실과 관련해서도 문 전 대통령의 “너무 단정적이었다”는 지시 뒤 “최종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입장을 변경해 대응하라”는 방침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시신이 소각됐음을 알면서도 불확실하단 언론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왼쪽) 씨가 13일 오후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씨는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3명을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뉴스1.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왼쪽) 씨가 13일 오후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씨는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3명을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뉴스1.

박지원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

이날 감사 결과에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자다가 봉창을 떄린다. 저는 국정원을 개혁했지 문서를 파기하러 가지 않았”고 주장했다.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국민의힘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고 이대준 씨의 억울한 죽음에 진실을 밝히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모든 사건 관련자에 대한 수사와 책임에는 그 어떤 예외도, 그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처음부터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사실관계를 비틀고 뒤집은 조작 감사”라고 반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