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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본 걸로 할게"…서해피격 은폐 보여주는 해경청장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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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 본 걸로 할게.” 서해에서 북한에 피살된 이대준씨 사건을 조사할 당시 해경 책임자가 한 발언이다.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 정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다.

감사원은 13일 서해에서 북한에 피살된 이대준씨 사건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발표 자료를 통해 당시 이대준씨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2차 발표 당시 해경은 ‘(이대준씨) 발견 당시 한자가 기재된 구명조끼를 입었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이를 발표 내용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이같은 은폐 정황과 관련해 감사원은 “해경 관계자는 (2020년) 9월 28일 구명조끼에 한자가 기재되었다는 국방부 자료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청장이 ‘나는 안 본 걸로 할게’라는 발언을 하였다고 진술” 했다고 설명했다.

한자가 써있는 구명조끼를 착용은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설을 뒤집을 수 있는 의미있는 증거였다. 감사원은 “해경은 국내 유통되는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는 이대준씨가 배에서 이탈할 당시부터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감사원에 따르면 해경은 “3차 발표에서도 무궁화10호의 구명조끼(B형) 수량 ‘이상없음’이 확인되었고,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착용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명조끼(B형)이 착용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해경 관계자가 2차 중간수사 발표 초안 작성 과정에서 청장으로부터 ‘다른 가능성은 말이 안 된다. 월북이 맞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는 정황도 덧붙였다.

감사원은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월북의 근거나 동기로 단정된 사항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감사원은 “해경은 (2020년) 9월 24일 1차 중간수사결과 발표 시 자진 월북의 주요 근거로 제시된 ‘배에 남겨진 슬리퍼’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이대준 씨의 것으로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왼쪽) 씨가 13일 오후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씨는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3명을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날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욱 전 국방부장관을 불러 조사중이다. 뉴스1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왼쪽) 씨가 13일 오후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씨는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3명을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날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욱 전 국방부장관을 불러 조사중이다. 뉴스1

또 감사원은 “직접 관련 없는이대준씨의 사생활(채무상황)까지 공개한 것은 내부 규칙 위반”이라고 했다. 2020년 10월 22일 3차 발표에서 해경이 꽃게구매 알선행위로 도박자금을 마련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이대진씨의월북 동기를 도박자금 탕진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날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 5개 기관에서 20명에 대해 14일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이들에게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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