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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툭튀' 아태협 북한 그림...관세청 '어디서 어떻게 왔나' 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서빙고역 인근 쌍방울그룹 본사 내에 있는 아태평화교류협회. 사진은 지난해 11월 촬영됐다. 내부에 북한 그림이 걸려있다. 채혜선 기자

서울 서빙고역 인근 쌍방울그룹 본사 내에 있는 아태평화교류협회. 사진은 지난해 11월 촬영됐다. 내부에 북한 그림이 걸려있다. 채혜선 기자

 쌍방울 그룹이 경기도의 대북교류 행사를 지원하는 과정에 관여한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가 이번엔 북한 그림 논란에 휩싸였다. 소장하고 있는 수십 점의 북한 그림이 통일부 승인을 받지 않고 들여온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아태협 측은 “기부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시자료에도 그림에 대한 기부 내역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관세청이 밀반입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아태협·경기도 주최 행사에서 북한 그림 전시 

민간단체인 아태협은 2018년 11월 경기 고양시에서 ‘아시아태평양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경기도와 공동 주최했다.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물론 리종혁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쌍방울그룹은 아태협을 통해 이 행사의 비용 수억 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장엔 40여점의 북한 그림이 전시됐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는 북한 물품을 반입할 때 거래 형태나 대금 결제 방법에 대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관세청에도 해당 물품을 신고하는 등 통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태평화교류협회가 제작안 안내책자에 소개된 북한 미술품. 독자 제공

아태평화교류협회가 제작안 안내책자에 소개된 북한 미술품. 독자 제공

그러나 행사장에 전시된 그림 상당수가 통일부 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밀반입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실이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태협은 당시 전시된 그림 중 3점만 반입 승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승인 없이 전시한 그림은 42점이다.

그림 중엔 북한 최대 예술창작단체인 만수대창작사의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고 한다. 만수대창작사는 2017년 8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71호의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우리 정부는 이미  2016년 12월 이 단체를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안 의원은 지난 7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며 “통일부 승인 절차가 간단한데도 불구하고 (아태협이) 반입 신청 절차 없이 몰래 (그림을) 들여온 것은 문제가 있는 반입품이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이어 “터무니없는 고액을 물품 대금으로 지급했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고,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아태협은 201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도 북한 그림 37점을 전시하려 했다고 한다. 이 그림들은 2018년 고양시에서 전시한 그림과는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개하기 부적절하다’는 통일부의 의견에 따라 전시하지 못했다. 아태협은 뒤늦게 통일부에 그림을 신고했고, 2020년 서울본부세관 특수조사과에 의해 모두 압류됐다.

아태협“기증받은 그림”, 관세청 밀반입 여부 조사 중

아태협은 이 그림들을 “기증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아태협 회장 안모씨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사가 아닌 중국동포를 통해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자료를 확인한 결과 아태협의 2018년도 재무상태표엔 ‘미술·서화·골동품’ 항목 자산이 ‘0원’이었다. 2019년 재무상태표도 ‘0원’이었고, 같은 기간 공시된 기부자 명단도 전무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태협 한 관계자는 “안씨가 북한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그림을 몰래 들여와 사무실 등에 전시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다”며 “관계자들도 불법 그림인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태협은 북한 관련 암호화폐(APP COIN) 사업도 추진했다. 코인 안내 책자에는 “다양한 상품 중 북한의 예술품을 주 타깃으로 선정한다”며 “북한의 예술품은 세계 유일의 미개척시장으로 이를 국내의 다양한 수집가들에게 알리고 입찰한다면 좋은 시장이 되어 남북교류 협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아태협의 북한 그림 밀반입 의혹에 관세청도 강제 수사에 나섰다. 서울본부세관은 지난 11일 관세법 위반 혐의로 아태협 사무실과 주요 관계자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아태협이 보관 중이던 북한 그림과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경찰도 “아태협이 밀반입한 북한 그림을 은닉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아태협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위반 여부에 대해 입건 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달 2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수원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달 2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수원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쌍방울 그룹의 정·관계 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도 지난달 7일 아태협을 압수수색하는 등 조사하고 있다. 아태협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구속)와 쌍방울 그룹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는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태협 회장 안씨는 2019년 1월 24일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현 SBW생명과학)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검찰은 안씨 등 아태협 관계자들이 지난 대선 때 이 대표 지원을 위해 불법 선거운동 조직을 만든 혐의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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