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을 발표하는 양사 마크 저커버그, 사티아 나델라 CEO. 사진 메타
메타(구 페이스북)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하루 간격으로 메타버스 관련 신제품을 공개했다. 그런데 사업 폭과 방향은 전혀 다르다. 빅테크의 메타버스 사업에 온도 차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원인과 배경, 시사점은 뭘까.
무슨 일이야
메타는 11일(현지 시간) 시선 추적과 표정 인식 기능을 탑재한 가상현실(VR) 헤드셋 신제품 ‘메타 퀘스트 프로’를 공개했다. 가격은 1499달러로, 기존 모델의 3배다. 메타는 이날 메타버스 상의 업무용 기능을 위한 MSㆍ줌과 협업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회사 주가는 3.92% 하락했다. 메타의 VR 사업부문 리얼리티랩스는 지난해 102억 달러(약 14조원) 적자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만 이미 57억 달러(약 8조원) 적자다.
MS는 12일(현지 시간) 기술 컨퍼런스 ‘MS 이그나이트’에서 메타버스 상에서 아바타로 화상회의를 하는 ‘메시 아바타’ 기능을 공개했다. 메타의 VR 기기인 퀘스트 프로와도 연계된다. 이날 MS의 강조점은 ‘비용 절감’. 사티아 나델라 CEO는 기조연설에서 “역사적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모든 조직이 디지털의 힘으로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수행하려 한다”고 했다. 메타버스는 기업 업무 효율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
왜 온도 차 나나
빅테크들은 AR·VR(증강·가상현실)이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컴퓨팅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적용 영역과 속도에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 온탕: 메타는 엔터테인먼트·소셜·업무 3개 영역이 모두 메타버스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 본다. 메타가 VR 게임 제작사들을 인수할 뿐 아니라 한때 퀘스트용 반도체 칩셋과 운영체제(OS)까지 직접 개발해 내재화하려 했던 배경이다. 현재는 비용 문제로 칩셋·OS 자체 개발은 중단한 상태다.
◦ 중탕 : MS는 올해 초 게임사 블리자드를 인수할 때 “메타버스 관련 사업으로 연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자세다. MS가 최근 산업용 메타버스 사업팀을 신설했다고 IT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이 보도했다. 메타버스 사업을 전개하되, 공장 시뮬레이션 같은 실용적이고 좁은 영역에, 자사가 강점을 지닌 B2B로 우선 접근하겠다는 것.
◦ 냉탕 : 애플은 자체 AR 헤드셋과 스마트 글래스, 전용 운영체제(OS)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팀 쿡 애플 CEO는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AR은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면서도 “메타버스는 명확히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로 구현한 VR은 일정 시간 몰입하는 것이지, 좋은 소통의 방법은 아니다”라는 것.

12일 메타가 공개한 VR 헤드셋 기기 '메타 퀘스트 프로'. 사진 메타
저커버그는 왜 이렇게까지
메타의 저커버그가 14조 적자를 불사하고 메타버스로 질주하는 까닭은.
① 다 걸고 다 먹고 싶다
메타는 메타버스 세상이 열리면 ‘애플+구글’이 되려 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애플은 ‘기기(아이폰)+OS(iOS)+장터(앱스토어)’를, 구글은 ‘OS(안드로이드)+장터(플레이스토어)+커뮤니티(유튜브)’를 가져 양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메타는 일단 메타버스를 위한 VR 기기(퀘스트)에서 앞섰으니 장터(퀘스트 스토어)와 커뮤니티(가상공간 ‘호라이즌월드’)까지 압도적으로 갖겠다는 야심이다.
② 나도 플랫폼 할래
메타는 지난해 플랫폼의 힘을 뼈아프게 체험했다. 애플이 지난해 4월 iOS에 ‘앱추적투명성(ATT)’ 정책을 도입해 개별 앱이 이용자 동의를 받아야만 개인정보를 추적할 수 있게 했는데, 맞춤형 광고를 파는 메타의 사업모델에 직격탄이었다. 지난해 4분기부터 메타 순이익은 감소했고, 급기야 올해 2분기에는 사상 최초로 회사 매출이 줄었다. 전 세계 30억 명이 쓰는 소셜미디어도, 플랫폼 앞에서는 ‘을’인 것.
지난 4월 메타는 호라이즌월드에서 판매되는 NFT 같은 가상자산에 47.5%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공표했다. 하드웨어 플랫폼(VR헤드셋 기기 퀘스트) 수수료 30%에, 메타버스 플랫폼(호라이즌월드) 수수료 17.5%도 받겠다는 것. ‘애플보다 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③ 사내에 아무도 못 말려
‘M. M. H(Make Mark Happy· 마크를 기쁘게 하기)’. 메타 내 일부 직원들이 메타버스 사업 프로젝트에 붙인 별명이라고, 뉴욕타임즈가 지난 9일 보도했다. 메타버스를 향한 저커버그의 질주가 사내 공감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는 방증이라는 것.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이자 CEO인 저커버그를 견제할 세력이 사내에 없다는 것은 3~4년 전부터 지적된 바다. 게다가 지난해 12월에는 메타 암호화폐 사업을 총괄하던 데이비드 마커스 부사장이, 지난 6월에는 페이스북 광고 모델을 설계한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퇴사했다. 결과는 저커버그 독주 체제 강화다.
나와 무슨 상관
한국 IT업계에도 메타버스 열풍이 한차례 불다가, 기류가 변했다. 국내 게임사들은 메타버스ㆍNFT 같은 신산업을 벌이다가 올해는 본업인 신작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토종 메타버스의 대명사인 네이버의 제페토도 이용자 대부분이 10대라, 현재 매출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 중이다. 제페토 운영사인 네이버제트의 지난해 매출은 379억원, 영업손실은 295억원이었다.
업계에서는 10년 전의 ‘구글 글래스 데자뷔’를 언급하기도 한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는 2012년 구글 I/O 컨퍼런스에서 웨어러블 기기인 구글 글래스를 소개했고, 이걸 끼고 뉴욕 지하철을 타는 등 적극 홍보했다. 그러나 스마트 글래스는 전용 콘텐트가 부족한 데다,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회적 논란에 부딪혀 대중화되지 못했다. 구글은 구글글래스를 기업용으로 바꿔 사업을 잇고 있다.
당시 곤란해진 건 스마트 글래스 관련 기술 스타트업들이었다. 다른 분야로 피보팅(전환)에 성공한 곳들만 살아남았다. 한국 스타트업 중에선 시각 인식 기술을 지닌 스트라드비젼이 자율주행 자동차 SW기업으로, 시선추적 기술을 지닌 비주얼캠프가 전자책과 교육용 SW 개발 기업으로 사업 전환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