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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시각각

국익 없는 이재명의 '친일 국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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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Chief 에디터

신용호 Chief 에디터

이리 될 줄 알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한·미·일 훈련은 극단적 친일"이라며 '친일 국방' 카드를 흔들었을 때 전면전은 예고됐다. 그는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도”(10일), “좌시할 수 없는 안보 자해"(11일)라며 공세를 이어갔다. 가만있을 여권도 아니었다. 총출동 맹비난이었다. 친일 논쟁은 급기야 색깔론으로 번졌다. 필자가 예상했듯, 아니 이 대표가 의도한 시나리오대로 된 듯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계한인민주회의 2022 컨퍼런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계한인민주회의 2022 컨퍼런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시국에 친일 논쟁이라니. 김정은이 전술핵 협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환율·금리·수출의 위기가 급박한데 과연 온당한가.
 지난 10일 유튜브에 출연한 이 대표를 보면 '친일 프레임'으로 한판 싸워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혔다. 영상 제목이 '다시 욱일기 휘날리는 한반도?'였고, 시작 멘트부터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자위대 문제"라면서 분노선인 '독도'를 건드린다. 예고 화면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란 자막을 달았다. 모두 친일 거부감을 극대화하겠다는 장치다. 더구나 당일은 북한이 전술핵 부대의 훈련을 직접 지휘한 김정은의 모습과 저수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까지 공개한 날이었다. 거기서 북핵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했다.
 노림수가 뭘까. 한 야권 중진 인사는 "윤석열 정부가 비속어 논란으로 외교에서 문제가 많지 않았나"며 "이 대표가 그걸 놓치고 싶지가 않아 꺼낸 게 죽창가"라고 했다. 실제 그의 분석처럼 여론전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친일 논란으로 정부의 외교 허점을 파고들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번 기회에 지지층도 결집시키면서 '사법 리스크' 논란도 잠시나마 덮으려 했을 수 있다. 실제 이 대표가 유튜브 방송을 하기 전까지 주변 참모들은 이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한다. 문 정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이 대표는 스타일상 여러 채널의 의견을 듣다 방향을 즉흥적으로 결정하곤 하는데, 이번은 강성 팬덤 쪽의 의견을 덥석 집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다른 목소리가 처음 나왔다. 정세균 전 총리가 11일 미 대학 강연에서 "북한은 사실상 세계 4~5위의 핵 무력국”이라며 “한·미·일 3국간 안보 협력은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했다.
 내친김에 재선 이상의 원로·중진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권의 비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니 자신의 진영에서 나오는 목소리나마 새겼으면 해서다.
김대중 시절부터 당에 몸담아온 한 인사는 "큰 정치인은 언제든지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며 "냉정해야지 이 시기에 죽창가를 부를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핵 앞에 두고 친일논쟁 불지펴 #정치적 이익 계산했다는 의심 커 #원로 “훈련은 당연, 죽창가 안돼”

-이 대표의 훈련 비난은 적절한가.
 "전 정부에서도 안 한 적이 없다. 훈련은 당연한 거다. 너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데 그건 불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친일을 이용하는 양반들이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으나 바른 정치가 아니다. 국내 정치를 위해 국제관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훈련이 자위대를 공식 인정하는 거라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누가 자위대를 군대가 아니라 그러겠나. 일본은 실제 군사 강국이다."
 문 정부에서 일한 다른 원로도 "이 대표가 너무 극단적인 표현을 쓴다"며 "여론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독도를 앞세운 건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선전)"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잘 몰라서 그렇다. 일본의 군대 보유는 우리가 어쩔 수 없다. 자꾸 부정하는 건 난센스다. 현실은 인정해가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친일몰이'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미 대선 패배 이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선거와 당 대표 출마를 통해 자신만 위한다는 이미지가 더욱 강해진 그다. 원인을 제공한 북한은 가만두고 군사 협력을 친일이라 하면 안 된다. 당장의 위협은 자위대가 아니라 핵이란 걸 부정해서도 안 된다. 원로들의 조언처럼 '친일 논쟁'은 국익에 도움이 될 리 없다. 이제라도 정치적 이익만을 위한 움직임은 그만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