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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선진국은 폐기한 기초연금, 한국은 더 올리려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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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OECD가 권고한 연금개혁 방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례적으로 지난달 19~20일 연속으로 한국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경제검토보고서는 정부 세종청사에서 빈센트 코엔 경제검토국 부국장을 통해, 연금보고서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두 보고서는 ▶기초연금 대상자를 줄이되 취약 노인에게는 더 지급하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빨리 올리며 ▶국민연금 납부 연령을 연장하고 ▶국민연금에서 인정하는 소득 기준을 높여 연금을 더 받게 하라고 권고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초연금 대상자를 줄여 재정을 절감하면서, 고소득층에게는 재정안정화 조치를 전제로 연금 적용 소득의 상한을 높여 연금 지급액을 늘리라는 뜻이다.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을 통합 운영하라는 권고도 있었다.

정치권은 여야 없이 연금개혁 뒷전, 기초연금 인상에 주력
OECD는 취약 노인층에 집중한 선별적 기초연금 지급 제안
국민연금은 고령화 맞춰 보험료 올리고 납부 연령 늘려야
국민·공무원·사학·군인 4대 공적연금은 통합운영이 바람직

이 권고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시대 흐름에 한참 뒤떨어진 한국 연금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본 거다. 연금개혁은 뒷전인 채, 기초연금을 올리자는 정치권에 경종을 울렸다고도 볼 수 있다.

OECD 회의는 외교전쟁 같아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필자는 2001년 7월 OECD와 첫 인연을 맺었다. 한국경제검토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당시 권오규 재정경제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정부 대표단에 포함되어 파리 OECD 본부를 방문했다. 현장을 맞닥뜨려보니 OECD 회의가 외교전쟁과 같다고 느꼈다.

당시 OECD 한국보고서의 특별 주제로 ‘고령화 대처’가 선정되었다.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될 한국이 고령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취지였다. 회원국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보고서 초안이 발표되면 사전에 지정된 두 나라가 코멘트를 한다. 여기서 나온 코멘트 등을 종합해, 다음날 보고서 작성자와 한국 대표단이 주제별로 최종 보고서에 담을 내용을 심의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가 필요해 연금은 필자가, 건강보험은 KDI 이혜훈 박사(전 국회의원)가 대표단에 합류했다.

당시 한국 측과 OECD는 난타전을 벌였다. 세금으로 한국 근로자 평균 임금의 20%를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으로 지급하라는 권고 내용이 있어서였다. 빠른 인구 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정비하라는 취지는 좋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 노인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초연금 도입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거리가 될 것이 자명했다. 이러한 논리로 수용 불가를 강력하게 주장했음에도 당시 OECD의 복잡한 역학 관계로 인해 끝내 보고서에 수록되었다.

2005년 파리회의에서도 기초연금 도입 문제로 김석동 차관보와 존 마틴 OECD 국장이 격론을 벌였다.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국 입장과 권고안이 타당하다는 OECD와의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같은 날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회담에서도 연금개혁 문제가 언급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우리 대표단이 강경해졌다. 한국에 돌아간 뒤 화상회의로 결론을 내자는 김 차관보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며 일단락되었다.

특히 논란이 많았던 2001년의 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격론을 벌였던 당사자가 렌달 존스였다. 당시 한국·일본팀 부책임자였던 렌달 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으로 승진한 후 정년퇴직을 앞둔 2018년까지 한국보고서를 책임 집필했다. 렌달 팀장은 미국 대학생 시절 부산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한국말을 할 줄 안다. 파리에서 만났을 때 중앙일보 등을 보여주며 거의 매일 한국 신문을 읽는다고 할 정도로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지한파였다.

2012년부터 선별적 기초연금 권고

그런 렌달 팀장과 지속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던 주제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었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기초연금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다. 2003년 10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건, 국민연금 재정안정 노력보다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야당 반대 때문이었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면서 기초연금의 문제점을 지속해서 제기한 끝에, 2012년부터 선별적으로 기초연금을 운영하라고 OECD 입장이 바뀌었다. 진영 복지부 장관이 사퇴하는 등의 많은 논란 끝에 2014년 5월 기초연금 도입이 결정되기 이전에, 이미 OECD는 더 강하게 선별적인 기초연금 권고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복잡한 국내 사정으로 인해 당초 일정보다 많이 늦춰진 2014년 6월에서야 공개된 OECD 보고서에는 기초연금을 취약 노인 중심의 선별적인 제도로 운영하라는 권고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여러 번 냈던 권고 내용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지만, 정반대의 권고안을 냈다.

이후 OECD는 18개월 주기로 발간되는 보고서에서 계속해서 기초연금 운영 방향을 바꾸라고 권고해 왔다. 투입 비용 대비 노인 빈곤 완화 효과가 작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초연금 수급자의 3분의 1이 OECD 기준으로 빈곤하지 않음에도 극도로 빈곤한 노인과 똑같은 액수를 받고 있다.

OECD, 대부분 공적연금 통합 운영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들도 기초연금 대상자를 줄이고 취약 노인에게 더 지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기초연금을 더 지급하겠다고 한다. 대상자를 줄이고 취약 노인에게 더 지급하라고 하는데도, 오히려 대상자를 더 늘려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고까지 한다. 여·야 불문하고 국민 혈세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쌈짓돈 정도로 생각하니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OECD 보고서에서 주목할 대목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의 통합 운영을 권고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완전히 분리하여 운영하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한국·독일·프랑스·벨기에 4개국에 불과하다며 통합 운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도와 재정 통합이 아닌,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동일하게 지급하되,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이 추가 부담하는 보험료만큼만 재정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가 지급한다면 무리 없는 통합 운영이 가능하다. 군 특수성을 고려해 수급 연령 등의 예외 조항을 인정한다는 전제 아래 군인연금도 통합 운영에 포함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권고 내용 중 ‘더 내고 더 받을 수 있게 국민연금을 고치라’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국민연금에서 인정하는 소득이 실제 소득의 평균보다 훨씬 적어, 근로자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대폭 낮아지고 있다.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는 또 다른 이유는 100% 소득 비례 연금으로 운영되는 주요 선진국과 달리, 우리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어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소득대체율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국민연금을 100% 소득 비례 연금으로 바꾸면 해결이 되나, 이러한 방향으로의 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

미래 세대에 부담 주는 연금정책

‘더 내고 더 받게 하라’는 이번 권고 내용의 요지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조치를 취한다는 전제 아래 ‘국민연금에서 인정해주는 소득(2022년 기준 국민연금은 553만원까지 인정, 반면 공무원연금은 862만원까지 인정)을 상향 조정하여, 소득 인정액이 늘어난 만큼 보험료를 더 부담하게 하면서 연금도 더 받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또 ‘의무 납입 연령 연장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늘릴 수 있게 하여, 연금을 더 받을 수 있게 하라’고 권고했다. 단 소득이 없다면 의무 납입 연령 연장은 적용되지 않는다.

기초연금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국제기구도 잘못됐다 싶으면 권고 내용을 바꾼다. 제도 유지가 가능했다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세금과 보험료를 부담하던 복지 선진국이 이미 20년 전부터 기초연금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세대 간 부양이라는 허울 대신 자조 노력을 통해 자신이 낸 만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제도 유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20년도 넘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우리는 지난해 출생률 0.81, 한 해 26만 명도 못 태어나는 나라가 됐다.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한 해에 70만∼100만 명 태어난 세대를 위해 26만 명 태어난 세대의 부담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민낯이다. 시급한 연금개혁은 어렵다고 하면서 말이다.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를 국민과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