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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이번엔 채용비리, 구속 갈림길에 선 이상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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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과거 이스타항공을 탔던 승객들은 가슴을 쓸어내릴만도 하다. 조종사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부기장을 맡는 바람에 기장 혼자서 6시간 안팎 장거리 비행을 해낸 사례들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경 이스타항공 조종사(부기장)로 채용된 여성 A씨는 골프협회 고위층의 딸로 알려졌다. 부기장은 30대만 넘어가도 채용되기 어려운데 A씨는 40대 중반이라 이례적이었다. “창업주인 이상직 전 의원의 아들이 골프 유학중이라, A가 ‘백’으로 들어온 모양”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스타항공 전직 조종사의 회고다. “A가 수습 때 워낙 기량이 안돼 탈락 1순위였다. 그러나 회사에서 오더를 받은 특정 교관이 총대를 메고 합격시켜버렸다. 이후 A와 비행한 기장들은 ‘두 번 다시 같이 못 탄다’고 몸서리를 쳤다. 나도 A와 두 번 동남아를 다녀왔는데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당신은 앉아만 있으라’고 한 뒤 6시간 내내 나 홀로 조종했다. 그동안 A는 별 보고 놀았다. 이러니 A와 비행하겠다는 기장이 없어 A는 운항본부장을 맡은 고참 기장 비행기만 타는 신세가 됐다.”

민주당 청탁받고 부정 채용 의혹
앞서 횡령·배임 구속, 두 번 보석
법원 구속영장 심사, 결과 주목

또 다른 전직 조종사는 더 무서운 얘기를 했다. “A와 비행할 땐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밥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회고다. “A와 비행한 동료 기장에게 들은 얘기인데, A가 비행중 돌연 에어컨을 껐다고 한다. 산소가 희박한 고공에서 에어컨을 끄면 기내 여압이 제로가 돼 산소가 없어진다. 승객들이 죽게 되는 거다. 그러면 항공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소가 있는 1만 피트 이하로 급강하해야 한다. 까딱하면 추락으로 이어질 극도의 위험을 A가 자초한 것이다. 다행히 기장이 즉각 알아채고 ‘당신 미쳤어!’라고 고함 지르니까 A가 놀라서 에어컨을 켰다. 그래서 사고는 막았지만 기장은 죽다 살아났다. A에게 격노해 착륙 뒤에도 씩씩댔다고 한다.”

또 다른 특혜 채용 의혹자인 부기장 B씨의 사연도 황당하다. 전직 조종사의 회고다. “B도 기량이 떨어져 채용 배경을 놓고 말이 많았다. 기업인 아버지가 이상직과 친한 관계라 채용됐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어느날 내가 B와 비행을 하게 됐다. 실력을 아는터라 B에게 절대 조종간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B가 갑자기 ‘저, ‘백’으로 안 들어왔습니다’고 하는 거다. 황당해서 ‘내가 언제 물어봤어?’라고 하니 B는 ‘제 소문이 안 좋게 돌아서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고 하더라. ‘알았어’하고 말았다. 서울에 돌아온 뒤 다른 기장한테 그 얘기를 하니 ‘B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러고 다녀’라고 하더라.”

전직 조종사의 한탄이다.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조종사·승무원으로 워낙 많이 들어왔지만 뭘 잘못해도 감싸기 급급했다. 내가 이스타항공 사람이었으면서도 친지들에게 ‘다른 큰 항공사 비행기 타라’고 한 이유다.”

그의 말대로 이스타항공은 채용 비리 규모가 100명이 넘는다는 의혹에 휘말려있다. 검찰은 2015년∼2019년 채용된 500명중 20%가 자격 미달인데도 민주당 정치인들을 비롯한 특정 인사들의 청탁에 따라 부정 채용된 혐의를 잡고 창업주 이상직 전 의원과 최종구 당시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일자리를 구하려 사력을 다해온 청년들에게 피눈물을 안긴 범죄 행위다.

이뿐 아니다. 이상직 전 의원은 544억원대 회사 주식을 아들과 딸 소유 회사에 105억원대로 저가 매도해 회사에 400억원 넘는 손해를 끼친 혐의(횡령·배임)로 1심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스타항공 직원 605명이 해고됐고, 이들은 2년이 된 지금까지 복직하지 못해 택배나 대리기사로 힘겹게 생계를 잇고 있다. 그뿐인가. 이스타항공과 ‘한몸’ 격인 태국의 타이이스타 항공에는 증권·게임업계 출신으로 항공에 문외한인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가 고위직에 채용됐다. 사위가 근무한 기간 이 전 의원은 벤처진흥공단 이사장과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주당조차 이 전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반대하지 못했을 만큼 그의 죄질은 심각하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구속된지 1년여 만에 보석을 두 번이나 얻어내 거리를 활보 중이다.

이 전 의원 대신 새 주인을 맞았다는 이스타항공도 그의 보좌관 출신이 사장직을 유지했고, 요직도 구 이스타항공 인사들로  채워져 여전히 ‘이상직 항공’이란 말을 듣고 있다. 전주지방법원은 내일(14일) 이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한다. 지금까지 이 전 의원의 행태를 볼 때 행동의 자유가 주어지면 증거 인멸 시도를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