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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감독에 마동석이 말했다 “네가 그냥 연출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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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범죄도시4’‘황야’로 연출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액션을 설계한 작품. ‘범죄도시2’.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범죄도시4’‘황야’로 연출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액션을 설계한 작품. ‘범죄도시2’.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범죄도시4’도 네가 그냥 연출해.”

지난 봄 영화 ‘황야’를 찍던 허명행(43) 무술감독은 주인공 마동석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고서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1990년대 말 영화 ‘쉬리’ 등의 스턴트맨으로 시작한 허 감독은 ‘범죄도시’ 시리즈는 물론, ‘신세계’ ‘아수라’ ‘부산행’ ‘신과함께-인과 연’ ‘공작’ ‘백두산’ ‘극한직업’ ‘헌트’ 등 100여 편의 영화에서 액션을 만든 충무로의 대표 무술감독이다.

‘범죄도시4’‘황야’로 연출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액션을 설계한 작품. ‘신세계’.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드루와’ 액션 시퀀스는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사진 NEW]

‘범죄도시4’‘황야’로 연출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액션을 설계한 작품. ‘신세계’.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드루와’ 액션 시퀀스는 아직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사진 NEW]

그런 그가 ‘D.P.’ ‘지옥’ 등 넷플릭스 흥행작을 만든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로부터 연출 재능을 인정받아 ‘황야’의 메가폰을 잡고 있던 중, ‘범죄도시’의 기획·제작자이기도 한 마동석으로부터 또 다시 연출 제안을 받은 것이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액션물 ‘황야’(2023년 하반기 개봉 예정), ‘범죄도시4’(2024년 개봉 예정) 모두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이다. 무술감독이 대작 상업영화의 연출을 맡는 건 허 감독이 처음이다.

다음 달 ‘범죄도시4’ 크랭크인을 앞둔 그를 최근 서울 서교동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술감독의 생명력이 짧다 보니, 영화 제작의 꿈을 갖고 계속 준비해왔는데, 운 좋게 연출 제안이 연이어 들어왔어요. 내가 잘하는 액션 장르라면 해볼 만 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저를 믿고 작품을 맡겨준 두 제작자에게 감사하죠.”

‘범죄도시4’는 김무열과 이동휘가 악역으로 등장하며, 주인공 마석도 형사(마동석)가 사이버 도박 등 디지털 범죄에 맞서는 내용이다.

허명행 무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

“상황과 동선을 보면 어떻게 찍어 편집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올라요. 어릴 때부터 스승 정두홍 무술감독으로부터 훈련받은 결과죠. 4편에선 좀 더 업그레이드된 액션 테크닉을 선보이려 합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관건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빌런들에 맞서는 마석도 형사의 액션을 어떻게 차별화하는가에 달려있다. 허 감독은 1편의 청부 액션에 이어, 2편에선 유도 기술을 배합한 마석도의 액션을 선보였다. 일본 야쿠자가 빌런으로 나오는 3편에선 어떤 액션이 등장할까.

“정장 입은 야쿠자의 흉포한 액션이 새롭게 느껴질 것 같고, 다소 힘겹지만 이를 끝내 무력화시키는 마석도의 액션이 볼만할 겁니다. 마석도에 맞서는 빌런들의 상황과 리액션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액션을 디자인하는 수밖에 없어요. 과잉 진압이지만 마석도니까 용인되는, 그 통쾌함이 시리즈의 정수잖아요.”

‘범죄도시4’‘황야’로 연출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액션을 설계한 작품. ‘헌트’.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범죄도시4’‘황야’로 연출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액션을 설계한 작품. ‘헌트’.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최근 개봉한 영화 ‘헌트’에서 이정재 감독의 액션 디렉션은 ‘박력’이란 한 단어였다고 한다. 추상적 단어를 액션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허 감독은 인물들의 직진하는 동선을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물러서지 않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직진하는 동선과, 목적성이 뚜렷한 액션을 처절하게 그려내는 게 목표였다”는 것이다. 허 감독은 몸 사리지 않고 액션신을 소화해낸 이정재·정우성 두 배우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계단 격투신에선 서로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타격 액션에만 집중했다. 기술적인 면 뿐 아니라 도전적인 면에서도 두 배우의 액션 감각을 높게 평가한다”면서다.

허 감독이 만든 수많은 액션 중에서 관객의 뇌리에 가장 깊게 박힌 건 ‘신세계’의 ‘드루와, 드루와’ 액션 시퀀스다. 조폭 우두머리 정청(황정민)이 반대파 조직원들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절한 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드루와’는 제게 익숙한 단어에요. 정두홍 감독이 저와 액션 합을 맞출 때 늘 ‘야, 들어와’라고 얘기하거든요. 이걸 찍은 뒤, 박훈정 감독이 제게 ‘연출해볼 생각 없어?’라고 물어보셨던 기억이 나네요.”

액션 철학을 묻자, 그는 주저 않고 “액션은 서스펜스”라고 답했다. 드라마에 액션이 가미되는 상황에서 보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서스펜스를 만들어주는 것이 무술감독의 영역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D.P.’의 군대 내무실 구타 장면을 예로 들었다.

“한준희 감독에게 내무실에서 그냥 때리고 밟는 건 하나도 안 무섭다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벽에 삐죽 튀어 나와있는 못을 노리고 구타하는 걸 제안했죠. 그 장면에서 엄청 가슴 졸였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서스펜스와 심리를 담아야 제대로 된 액션 신이라고 봅니다.”

‘범죄도시4’ ‘황야’ 등 액션이 전면에 드러나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하지만, 허 감독은 언젠가 ‘아수라’ 같은 심리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100여 편의 영화를 하다 보니 제 나름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였어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궁극적으론 제가 몸 담고 있는 서울액션스쿨(회장 정두홍 감독)이 영화제작사로 성공해서 후배들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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