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베트남·수리남은 왜 K드라마에 분노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MBC ‘빅마우스’에서 태국 시청자들의 반발을 부른 장면. 사진 MBC 캡처

MBC ‘빅마우스’에서 태국 시청자들의 반발을 부른 장면. 사진 MBC 캡처

“Smells like f**king kimchi!”(김치 같이 역한 냄새가 난다)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상을 휩쓴 영화 ‘버드맨’에 등장하는 이 대사 한 줄은 한국에서 ‘김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이 꽃을 가리키면서 내뱉은 이 대사를 두고 김치를 비하한 것이냐는 논란이 벌어졌고, 당시 영화 홍보 담당자는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대사일 뿐”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버드맨’ 사례 뿐 아니라,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에 휩싸인 서구의 영화나 드라마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최근의 상황은 반대다. K콘텐트를 향한 세계의 관심이 날로 커져가는 동시에, 타 문화나 인종에 대한 비하·왜곡·차별적 묘사로 지탄 받는 한국 작품도 잇따르고 있다. 어떤 국내 콘텐트도 더는 ‘내수용’으로만 머물지 않는 상황에서, 제작 과정에서 보다 철저한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부터, 이번 기회에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인종차별적 인식을 없애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특정국가 언급 땐 대본 검수받아야”

최근 가장 명백한 타문화 비하 사례로 꼽히는 건 MBC 드라마 ‘빅마우스’에 등장한 대사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주인공 박창호(이종석)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를 향해 “네 엄마는 너 같은 사이코 낳고 도대체 뭘 드셨냐. 똠얌꿍(태국식 새우탕)?”이라고 도발하는 장면이 논란이 됐다. 태국 네티즌들은 “태국에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비꼰 대사다” “똠얌꿍을 먹으면 피가 더럽혀진다는 것이냐” 등 불쾌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과 넷플릭스 ‘수리남’은 아예 해당 국가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항의한 사례다. 최근 종영한 ‘작은 아씨들’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극 중 인물을 “영웅”이라고 표현하고, “제일 잘 싸운 전투에서는 한국군 1인당 베트콩 20명을 죽였다” 등의 대사를 내보내 베트남 정보통신부로부터 ‘역사 왜곡’이라는 항의를 받았고, 결국 지난 6일부로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방영이 중단됐다.

지난달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수리남’은 실존 국가인 수리남을 마약 밀매가 이뤄지는 부패한 국가로 묘사해 수리남 외교부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한국 대사관이 현지 교민들에게 “안전에 주의해 달라”는 당부까지 해야 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3’는 극 중 캐릭터 알렉스 리가 레게 머리와 과도한 문신 등을 한 모습으로 등장해 흑인 문화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흑인의 정체성이 담긴 헤어스타일을 개연성 없이 흉내 냈다는 해외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배역을 연기한 배우 박은석이 사과문을 올린 뒤에야 사태가 일단락됐다.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라켓소년단’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한국 코치가 현지 환경에 불만을 표하는 등 인도네시아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장면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처럼 최근 들어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 되는 이유는 달라진 K콘텐트 위상에 걸맞는 문화적 감수성을 콘텐트 업계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널리 세계로 확산되는 것에 비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발맞춰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할리우드가 한국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우리가 기분 나빠했다면, 지금은 K콘텐트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입장이 뒤바뀐 것”이라며 “제작자들이 아직까지 국내 시청자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정 국가를 직접 언급하는 경우 한층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국가를 꼭 언급해야 한다면, 해당 국가 출신에게 대본을 검수받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김 평론가의 제언이다.

우리 안의 인종차별 돌아볼 때

대중문화가 소수자를 묘사하는 방식을 탐구한 책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의 저자 백세희 변호사(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도 콘텐트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만큼, 제작자들의 책임감 역시 커져야 한다고 짚었다.

백 변호사는 “‘오징어 게임’도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묘사와 클리셰로 가득하다”며 “오락적 재미를 준다는 이유로 이런 콘텐트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우리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혐오와 인종주의를 답습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콘텐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탓으로 돌리려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큰 권위를 지니는 창작자들의 인식 개선이 1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돌아볼 때라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한국 사회 인종주의의 역사를 다룬 책 『한 번은 불러보았다』를 펴낸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립신문’ 등 과거 자료를 찾아보면 우리는 개화기부터 서구의 인종주의를 그대로 이식받았다”며 “여기에 더해 식민지 시대, 세계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보다 경제발전이 느린, 비(非)백인 국가를 마음 놓고 폄훼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이런 사회에서 창작을 하는 개개인을 탓하기는 어렵다”며 “인종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제도와 교육 측면에서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MBC ‘빅마우스’에서 태국 시청자들의 반발을 부른 장면. 사진 MBC 캡처

MBC ‘빅마우스’에서 태국 시청자들의 반발을 부른 장면. 사진 MBC 캡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