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인연령 상향 10년 헛바퀴, 건보 추가지출만 매년 5000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인구위기 20년

인구위기 20년

A씨(68)는 지난해 19개 병·의원에 1425회 방문했다. 주로 방문한 데가 동네의원이다. 그는 총 2525만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썼다. 지난해 자신이 낸 건보료(127만여원)의 20배다. 원래 동네의원에서는 총 진료비의 30%(평균 6000원)를 환자가 내야 하는데, 노인 할인 덕분에 10%(1800~1900원) 정도만 냈다. 약국도 30%를 내지 않고 1000원 안팎만 냈다. B씨(69·여)도 비슷하다. 12개 의료기관에서 1284번 진료를 받았다.

두 사람처럼 지난해 진료비 할인(노인외래진료비 정액제)을 받은 노인이 758만9000명에 달한다. 2016년 593만 명에서 크게 늘었다. 매년 5000억원가량의 건보 재정이 할인비용을 메운다. 복지부는 재정 압박을 줄이려고 2019년 대상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안을 내놨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시작할 때 출산율은 1.19명이었다. 이후 급락세가 이어지자 인구 축소 사회 적응 전략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그래서 노인 할인 연령 상향 방침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는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년)에서야 ‘인구 구조 변화 적응’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세부 전략은 다양한 가족의 수용, 연령통합 사회 준비 등 기존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전에는 단편적 정책만 내놓았고, 이마저 말잔치로 끝났다.

대표적 어젠다가 노인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것이다. 2012년 기획재정부가 중장기 전략보고서에서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당사자인 대한노인회가 공식 제안했고 지난 정부의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2019년 1월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6년 제1차 노후준비 지원 5개년계획(2016~2020년)에서 정년 연장(60세→65세)안을 냈다. 2019년 기재부도 고령자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 등의 계속고용제 도입 방침을 내놨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급 위주의 주택 정책이 인구 위기 시대에는 안 맞다”며 “이렇게 많이 지어놓고 나중에 어떡할지 모르겠다. 과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8월 ‘미래 인구·가구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주거정책 패러다임’ 보고서에서 “주택 노후화, 빈집 대응이 정책의 핵심”이라며 정책 전환을 주문했다.

건강보험·국민연금은 아예 손놓고 있다. 현행 건보법에는 건보료가 소득의 8%(내년 7.09%)를 넘지 못하게 상한을 정해놨다. 3년가량 지나면 못 버텨 법을 바꿔야 한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직장·학교의 보건 자료를 의료정보로 통합해 일생의 이력을 모으고, 다소 불편이 따르더라도 특정 네트워크 내에서만 진료받을 수 있게 제한하는 문제를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예산도 엄밀히 따져 인구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지난 16년간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2016~2020년 저출산 예산의 47.3%만 직접 지원 예산이다. 나머지는 지자체 CCTV 교체, 청소년 흡연·음주 예방 등 거리가 먼 사업이 저출산 예산으로 포장됐다.

인구 위기 컨트롤타워도 애매하다. 복지부 인구정책실, 기재부 인구정책TF,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으로 흩어져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