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조사스님들이 깨친 바를 어록으로 남겼듯이, 나는 사진으로 현대판 어록을 편찬 중이다.”
수행자이면서 사진가로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관조(觀照, 1943~2006) 스님의 작품집 『觀照』(불광출판사)가 출간됐다.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찍어둔 20만 점 넘는 사진들 가운데, 불교 관련 사진 270점을 고르고 골라서 담은 유고집이다. 사진집에 실린 사진은 모두 필름 카메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올해는 관조 스님의 16주기다. 상좌인 승원 스님(경기 가평 백련사 주지)을 비롯한 관조 스님 문도회가 관조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멋지고 제대로 된 작품집’을 펴냈다. 승원 스님은 11일 “제가 좋은 작품집을 꼭 내드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러질 못해 가을만 되면 늘 마음이 무겁고 죄스러웠다”며 “이제 『觀照』를 출간하니 16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 마음의 빚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작품집에 들어간 마음과 정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관조 스님은 30대 초반에 해인사 강원에서 강주 소임을 맡았고, 범어사에서 총무 소임을 맡은 바 있다. 그 뒤에는 일체 공적인 직을 맡지 않고, 사진을 수행과 포교의 방편으로 삼았다. 16년 전 관조 스님이 남긴 열반송이 견처(見處)를 보여준다.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이니(森羅萬象天眞同ㆍ삼라만상천진동)/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았네(念念菩提影寫中ㆍ염념보리영사중)/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莫問自我何處去ㆍ막문자아하처거)/ 동서남북(본래 그 자리)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水北山南旣靡風ㆍ수북산남기미풍).”
관조 스님은 사람과 자연, 세상 만물이 참이라고 말한다. 부처다. 진리다. 그러니 스님이 카메라에 담은 것은 ‘부처의 세계’다. 부처가 사는 세상, 다름 아닌 불국토다.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듯이 스님은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작품집에는 깨달음이 몸을 바꾼 그 빛이 오롯이 피어난다. 때로는 산사의 새벽 풍경으로, 때로는 삶과 열반의 경계에서 불타는 다비식의 풍경으로, 때로는 가을 들녘에서 추수하는 출가자들의 풍경으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고 진다.
관조 스님 사진의 묘미는 담백함이다. 필터나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관조(觀照)라는 법명처럼 스님은 세상을 필터 없이 바라보고, 필터 없이 담아냈다. 화려한 조작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관조 스님이 빚어낸 ‘평범하고 꾸밈없는 응시’는 독자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 묵직한 아름다움에 젖게 한다.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는 열반송에는 관조 스님의 걸음걸이가 담겨 있다. 동서남북 어디로 가든, 동서남북 어디를 찍든 스님의 카메라는 삶의 본질을 담으려 한 까닭이다.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 아무리 바람이 일어도 흩어지지 않는, 흩어질 수 없는 빛. 그걸 사각의 앵글에 담고자 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집을 보고 읽으며, 관조 스님의 구도기를 함께 보고 읽는다.
생전에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왜 사진을 찍는가?" 관조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사진은 나와 상대를 동시에 정화시킨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 자신이 정화되고,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정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