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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전술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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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영익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영익 정치에디터

한영익 정치에디터

고려 말기인 1380년 전라도 진포 인근에서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가 벌어졌다. 진포대첩이다. 최무선 장군은 전함 100척을 동원해 500여 척이나 되는 왜구 함대를 격파했다. 처음으로 사용한 화포(火砲)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칼과 활이 당시 두루 쓰이던 전술무기(tactical weapon)였다면, 화약은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이자 전략무기(strategic weapon)였던 셈이다.

중국은 화약의 중요 재료인 염초(질산칼륨) 제조법을 국가 기밀로 정하고 수출도 제한했다. 최무선 장군이 흙에서 질산칼륨을 얻는 ‘취토법(取土法)’을 원나라를 통해 힘들게 들여왔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후 명나라가 개선된 제조법을 확보했음에도 이를 조선에 알려주지 않았다. 화약을 전략물자로 취급해 기술 우위를 놓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조선에는 그래서 늘 화약이 부족했다.

현대의 대표적 전략무기는 핵무기다. 편의상 ‘전술핵’과 ‘전략핵’으로 구분한다. 위력이 둘의 차이를 가른다. 전략핵은 도시 하나를 통째 날려버릴 만큼 위력이 세다. 3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질 수 있기에 군사 전문가들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unusable weapon)라고도 부른다. 반면에 전술핵은 그에 비해 위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전술무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전술핵이라는 말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큼이나 역설적이다. 아무리 위력이 약하다 한들 핵무기는 필연적으로 전략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달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실제 사용한다면 당초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 환경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현대전에서 작전 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 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최근에는 ‘전술핵’ 운용부대 군사훈련까지 지도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역설적으로 전술핵은 파괴력이 높은 전략핵보다 더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략핵과 달리 ‘사용 가능한 무기’(usable weapon)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전술핵에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