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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정치인의 역사논쟁은 노선투쟁이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2.10.11/뉴스1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2.10.11/뉴스1

1.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조선망국론’발언의 파장이 만만찮습니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11일자 정진석 페이스북)

2. 정진석의 주장은 이재명 민주당대표의 비판에 대한 반론에서 나왔습니다.
이재명은 10일 일본자위대가 참여한 한ㆍ미ㆍ일 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면서 ‘욱일기(일본자위대 깃발)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7일엔 ‘극단적 친일국방’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전형적인 ‘친일 프레임’입니다.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의 친일노선 때문에 일본군이 점령하게 생겼다’는 강변입니다.

3. 국민의힘이 흥분할만한 자극적 공세입니다.
그래서 당대표격인 비대위원장이 나섰습니다. 못지않게 자극적인 역사 한 대목을 꺼내들었습니다. 친일의 근본을 돌아보게 만드는 ‘조선망국 원인론’입니다. 직접표현은 ‘조선은 부패해 자멸했다’지만, 맥락상 뉘양스는 ‘일본의 침략전쟁 탓이 아니다’입니다.

4. 정진석이 쓴 장문의 글은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만 강조했습니다. 조선왕조의 무능을 길게 열거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식민화는 불가피했다는 결론이 됩니다. 일제에의 협조가 불가피했다, 즉 친일의 변명으로 들립니다.

5. 역사논쟁은 정치적으로 뜨거운 이슈입니다.
정치는 역사에서 정당성을 찾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행위를 ‘역사적 맥락’으로 설명함으로써 여론의 지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현재입니다.

6. 그래서 정진석의 반론에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까지 들끓었습니다.
‘천박한 역사인식..역대급 망언..굴종적 대일관’(박흥근 민주당 원내대표)
‘이재명의 덫에 놀아나는 천박한 발언’(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

7. 확신범 정진석은 더 핏대를 올렸습니다.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지 말라..친일 프레임..가소로운 얘기다..기가 막힌다..’
그러자 정진석의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면장을 지냈다는 사실까지 들먹이는 인신공격성 글들까지 SNS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8.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안보전략을 둘러싼 정치공방입니다.
미국ㆍ일본을 강조하는 보수와 중국ㆍ북한을 강조하는 진보의 노선투쟁입니다.

9. 그러나 역사는 한마디로 재단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가능합니다. 흥분하면 양면을 보지 못합니다. 정치인이 흥분하는 건 ‘유권자들도 흥분하라’는 선동입니다.
〈칼럼니스트〉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