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통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11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지난 5일 보냈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유 총장은 당시 서해 피살 공무원 감사가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이 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다 카메라에 포착됐다. 야당이 ‘대통령실의 하명 정황’이라며 맹비난하자 “정당한 소통”이라 반박한 것이다.
유 총장은 ‘실세 사무총장’이란 세간의 평가처럼 이날 국정감사 내내 야당 의원의 질의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유 총장은 “문자로 논란거리를 제공해드려 송구하다”면서도 “감사원의 규정을 싹 무시하는 굉장히 무식한 소리”라거나 “신문에 허위사실이 났었다”고 맞불을 놨다. 이런 유 총장을 보며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만히 계시라”고 10여초간 노려보며 책상을 내리치기도 했다.
유병호 "답변 않겠다, 문자 매일 지워"
유 총장은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이 수석에게 그 전에도 문자나 전화로 연락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수차례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해 논란의 여지도 남겼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증언거부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 사무총장은 “증언 거부가 아니라 미주알고주알 말씀드리기가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수석과의 소통 과정을 공개할지를 묻는 말엔 “(문자를) 삭제를 해서 복구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불가 입장’을 밝혔다. 유 총장은 “(사무총장) 신분상 제 폰 (문자는) 매일 매일 지우고 있다. 저도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유 총장은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이 수석과의 문자 소통을 계속 캐묻자 “지금 감사원과 대통령실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독립성이 보장되는 상태”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날 국정감사는 시작부터 여야 간 충돌이 유독 거셌다. 야당은 유 총장의 문자를 둘러싼 대통령실 하명 의혹을 시작으로 서해 피살 및 전현희 권익위원장 감사의 절차 위반 의혹,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청을 물고 늘어졌다. 감사원이 최근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에 공직자 7000여 명의 KTX, SRT 이용 내역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민간인 사찰이라 주장했다. 야당은 또, 이 수석이 국회에 출석할 것과 감사위원회 의결 패싱 문제를 제기한 감사위원의 국회 증언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여당이 “전례가 드물고 감사위원의 편향성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며 오전 중 국감이 파행을 빚었다. 이후 감사위원이 증언 없이 배석하는 정도의 타협안으로 국감이 재개됐다.
최재해 "文조사 보고안해, 김정숙 감사 검토"
이날 최재해 감사원장도 야당의 질의에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유 총장의 문자 논란에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엄호에 나서기도 했다. 야당 의원의 질의 중 말을 끊고 반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 원장은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과거 일을 점검하는 감사 속성상 현시점에서는 지난 정부의 잘못만 들춰낸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감사원은 일관되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공정하게 감사하고자 노력해왔음을 말씀드린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 원장은 유 총장의 문자와 관련한 감사 하명 의혹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에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사전에 보고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가 미칠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보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감사 업무에 관련한 결과를 도출하는데 필요한지 여부만 고려했다”며 “정치적 고려를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이런 최 원장의 모습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국회에서의 소극적인 답변으로 ‘식물 원장’ 비판을 의식한 것 같다”고 전했다. 최 원장은 야당에서 서해 감사 등 일부 감사가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아 위법이라 지적하자 “(감사위원의) 문제 제기는 있었다”면서도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나가는 특별 감사 사항에 대해서는 원장 결제로 충분히 나갈 수 있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18년 인도 타지마할을 방문한 것과 관련한 의혹들에 대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전체적인 사실관계를 모니터링 해서 감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