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매출 2억 대박…영업이익 378% 뛰게한 '신명품'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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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패션 브랜드 ‘스튜디오 니콜슨’이 서울 현대백화점 본점에 첫 개장 했다. 국내에선 아직 지명도가 낮은 영국 브랜드인데, 오픈 직후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장이 북적였다. 당시 주말 매출만 2억원대였다. 보통 신규 매장의 하루 매출이 3000만~4000만원 수준인 것과 대조된다.

지난달 23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 국내 첫 매장을 연 스튜디오 니콜슨 전경. [사진 삼성물산]

지난달 23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 국내 첫 매장을 연 스튜디오 니콜슨 전경. [사진 삼성물산]

신명품으로 영업이익 378% 증가

11일 패션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선 스튜디어 니콜슨 같은 이른바 ‘신(新)명품’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긴 역사를 가진 전통 브랜드가 ‘명품’의 범주에 묶인다면, 비교적 신생이지만 명품 못지않은 디자인과 품질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신명품으로 불린다. 흔히 ‘컨템포러리(동시대) 브랜드’라고 부르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이에 속한다.

지난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이런 신명품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독점 수입 브랜드인 아미·메종키츠네·톰브라운·르메르 등이 20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실적 호조를 이끌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78% 증가했다.

신명품 대표격으로 꼽히는 아미는 지난달 14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삼성물산]

신명품 대표격으로 꼽히는 아미는 지난달 14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삼성물산]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는 싫다”

국내 패션 기업들은 일찌감치 해외 브랜드를 들여와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한섬은 지난 7월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워레가시’를 공식 론칭했다. 북유럽 스타일 디자인으로 연예인과 모델 등 ‘패션 피플’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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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인터내셔날도 지난달 14일 일본 여성 패션 브랜드 ‘엔폴드’를 들여왔다. 우에다 미즈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설립한 브랜드로, 국내 론칭 전부터 편집숍을 통해 판매되며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스튜디오 니콜슨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공들여온 브랜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닉 웨이크먼이 영국에서 설립한 브랜드로 우아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달 14일 '엔폴드'의 국내 첫 단독 매장을 열었다.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달 14일 '엔폴드'의 국내 첫 단독 매장을 열었다.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개성+고가...‘신명품’ 공통점

이들 브랜드를 보면, 요즘 드는 신명품 브랜드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아워레가시(2005년 론칭)와 엔폴드(2011년), 스튜디오 니콜슨(2011년) 등 만들어진 지 10년 내외의 비교적 ‘젊은’ 브랜드면서, ‘중고가’ 가격대다. 패딩·재킷·코트는 45만~200만원대, 팬츠·스커트는 35만~90만원대, 티셔츠는 15만~60만원대에 파린다. 유행에 구애 받지 않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젠더리스(genderless)’ 트렌드를 반영하는 등 현대적 감각을 추구한다.

스튜디오 니콜슨은 단순한 디자인과 우아한 실루엣, 좋은 소재를 추구한다. [사진 스튜디오 니콜슨]

스튜디오 니콜슨은 단순한 디자인과 우아한 실루엣, 좋은 소재를 추구한다. [사진 스튜디오 니콜슨]

무엇보다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는 싫다’는 젊은 층의 구미를 당긴다. 신명품 대표 주자로 꼽히는 아미와 메종키츠네, 메종마르지엘라 등은 초반에 이런 ‘신비주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흰색 티셔츠에 빨간 하트 로고만 박혀있거나, 옷 뒷면에 ‘아는 사람만 아는’ 스티치가 들어가는 식의 디자인이다.

브랜드 인큐베이터, 패션 편집숍 역할론  

신명품이 인기를 끌면서 각 패션 기업에서 운영하는 ‘편집숍’이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삼성물산의 비이커·텐꼬르소꼬모, 신세계의 분더샵, LF의 라움 등이 대표적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편집숍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수입 브랜드를 소량 매입해 판매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다”며 “판매 추이나 매출, 반응 등을 살핀 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를 골라내 정식 판권 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닉 웨이크먼 스튜디오 니콜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파리의 작은 갤러리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을 때부터 비이커 관계자들이 찾아왔다”며 “약 6~7년 인연을 쌓은 뒤 런던 외 첫 매장으로 서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송태근 비이커 팀장은 “비이커는 잠재력이 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에르메스 좋지만 너무 비싸”, 신명품 인기 끄는 이유

닉 웨이크먼 스튜디오 니콜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달 23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닉 웨이크먼 스튜디오 니콜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달 23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영국 브랜드 스튜디오 니콜슨은 소위 패션 좀 안다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다. 2018년부터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편집숍 비이커를 통해 소개됐고, 지난 2020년에는 일본 문스타와 협업한 스니커즈가 대박을 내면서 국내 인지도를 높였다. 지난 12일에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자라’와의 협업 컬렉션도 발표했다. 이때 발매된 스튜디오 니콜슨 남성용 바지는 출시 한 시간 만에 8000매가 팔려나가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매장 외에, 해외 첫 매장으로 서울을 낙점한 스튜디오 니콜슨의 닉 웨이크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최근 만났다. 그는 텍스타일(직물)을 전공한 뒤 디젤·막스앤스펜서 등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20여 년의 경력을 쌓은 베테랑 디자이너다. 지난 2011년 스튜디오 니콜슨(이하 니콜슨)을 론칭했다.

해외 첫 매장으로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내년에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를 일본 도쿄에 하나 더 낸다. 서울이 더 빨랐던 것은 삼성물산이 이겼기 때문이다(웃음). 6~7년 전 아주 작은 브랜드였을 때부터 비이커가 관심을 보여줬다.  
‘모듈형 옷장’에 들어갈 만한 옷을 만든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가.
새로운 계절이 온다고 매번 옷장 전체를 바꿀 순 없다. 옷을 하나씩 구매하지만, 부품만 갈아 끼우듯 옷장 전체에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 번 구매하면 적어도 20년 이상 옷장에 있을 수 있는 옷이어야 하고, 새 옷을 추가하더라도 조화롭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  
어떻게 가능한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핏(fit·몸에 잘 맞는 정도)’이 중요하다. 보통 여느 브랜드의 경우 2~3번 정도만 핏을 조정하지만, 니콜슨 같은 경우 4~5번 이상 본다. 잘 맞는 옷은 인생의 어떤 때나 어느 장소에서도 멋지다.  
남성복 디자인을 오래 했다.
남성복은 단순하면서도 기능적 요소를 중시한다. 이런 요소를 여성복에 적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젠더리스(genderless)’ 디자인을 차용하고 있다
셔츠나 재킷 등 남성적인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몸은 전혀 달라서 남자 옷을 입으면 무척 어색하다. 내가 스튜디오 니콜슨을 시작한 이유다. 젠더리스 디자인을 추구한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단순하고 우아한 실루엣을 남성복과 여성복에 각각 적용해 보여주고 싶다.  
한국에서는 최근 ‘신명품’이 인기다. 니콜슨을 포함해 왜 인기라고 보나.
한 번 사면 계속 입을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과 좋은 소재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이다. 에르메스가 좋은 줄은 알지만, 젊은이가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 니콜슨에서 사용하는 소재나 작업 방식은 에르메스 급이다. 하지만 가격은 몇 배나 차이가 난다. 르메르·메종 마르지엘라 등도 비슷하다. 젊은 층에게는 새로운 럭셔리로 통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감각적 디자인도 한몫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젊은 감각을 따라 하지 않는 게 젊어 보이는 비결인 것 같다. 니콜슨은 16세부터 60세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 언제 어디서나 조화로운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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