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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푸틴 편들기…러 재벌 초호화 요트 압류 제동 걸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당국이 압류하려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초호화 요트 ‘노르’를 놓고 홍콩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사실상 '푸틴 편들기'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주간 브리핑에서 미국의 요트 압류 방침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리 장관은 “홍콩은 개별 사법관할권이 가한 일방적인 제재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러시아 최대 철강회사의 회장인 알렉세이 모르다쇼프의 5억 2100만 달러(7481억 여원)짜리 요트인 노르는 러시아에서 출발해 홍콩 빅토리아 항에 입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서방의 제재로 많은 러시아의 이른바 ‘슈퍼 요트’들이 유럽 항구에서 나포되거나 입항을 거부당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들 초호화 요트들은 서방의 제재가 미치지 못하는 아시아, 터키, 카리브 해 등의 항구로 피신 중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항구의 바다에서 목격된 러시아 슈퍼요트 '노르'. AP=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항구의 바다에서 목격된 러시아 슈퍼요트 '노르'. AP=연합뉴스

모르다쇼프는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제재 명단에 올랐다.

미국은 노르가 서방의 제재 대상인 만큼 홍콩 당국에 압류할 것을 요구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금융 중심지로서 홍콩의 명성은 국제법과 국제기준을 준수하냐에 달려 있다”며 “제재를 회피하려는 개인이 홍콩을 도피처로 이용한다면 홍콩의 사업환경 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홍콩 당국은 “유엔 안보리가 부과한 제재는 이행하지만, 다른 사법관할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과된 제재는 이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즉 미국 등 서방의 제재는 무시하겠다는 얘기다. 미·중 갈등 속 홍콩 당국이 베이징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 리 장관 역시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다. 그는 지난 2020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반발해 제재한 홍콩과 중국 관리 11명 중 한 명이다. 리 장관은 이에 대해 “미국의 제재는 매우 야만적인 행동이고 이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홍콩의 공무원들은 국가와 홍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신화=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신화=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입장을 옹호했다. 중국 외교부의 홍콩 사무소인 주홍콩 특파원공서 대변인은 “수년간 홍콩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법치에 근거한 기업 환경을 유지해왔다”며 “국제 금융 센터로서 홍콩의 명성과 지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비방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러시아는 홍콩 당국의 결정을 환영했다. 이고르사지토프 홍콩 주재 러시아 총영사는 “노르의 도착을 미리 알고 있었다”며 “홍콩 당국이 제삼자가 부과한 제재 이행을 자제하기로 한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홍콩이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면서 요트 압류를 거부했지만 이 이슈가 종료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가 향후 홍콩 당국을 세컨더리 보이콧(제삼자 제재)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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