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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추경호·이창용 경제팀이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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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악몽의 3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는가 싶더니 경제 위기가 닥쳤다. 참 불우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번 위기는 전 세계를 휩쓰는 데다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구심점도 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물가 걱정이 없었다. 돈을 풀어 해결했다. 이번엔 돈을 조여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흥국 위기였다. 지금은 전 세계가 ‘제 코가 석 자’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밀어붙이고, OPEC플러스가 원유 감산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과거 위기 때의 국제 공조가 작동하지 않는다.”(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위기가 한두 해 만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인플레이션+경기침체) 암흑기는 10년 이어졌다.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73년부터 물가가 2%대로 떨어진 83년까지. 인플레이션은 한번 불붙으면 잘 잡히지 않는 고약한 특성이 있다. 볼커 미 연준(Fed) 당시 의장이 79~81년 기준금리를 10%에서 무려 20%로 끌어올렸으나 83년에야 물가가 안정을 찾았다.

이번 위기, 대책없고 국제공조 안돼
대공황 16년, 70년대 10년 이어져
금리 연내 1%p , 내년 더 인상할 듯
솔직하게 설명하고, 엇박자 줄여야

29년 대공황은 16년이나 지속됐다. 미국은 재정 확대(뉴딜정책)와 두 차례의 긴축(31, 37년)을 반복했으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2차대전을 겪고 나서야 긴 터널을 벗어났다. 대공황 직전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다. 돈이 넘쳤다. 2010년대가 비슷했다. IT 호황과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주식·부동산 버블을 만들었다. 정치 상황도 흡사하다.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를 앞세운 극우·극좌 세력이 득세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을 손에 들고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100년 만에 무솔리니 후계자를 자처하는 극우 총리(멜로니)가 등장했다. 프랑스·스웨덴·헝가리·체코·폴란드에서도 극우가 맹위를 떨친다.

우리 스스로 위기를 타개할 수밖에 없다. 추경호(경제부총리)·이창용(한국은행 총재) 경제팀은 있는 그대로 얘기했으면 한다. 외환위기 때 “펀더멘털은 문제없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됐다. 불안심리를 증폭시킬까 봐 그렇게 말했겠지만, 사태 진정에 별 도움이 안 됐다. 요새는 정보가 다양한 경로로 빠르게 유통된다. 근거 없는 낙관론을 내세우거나 ‘쉬쉬’ 하며 넘어가기 어렵다. “물가는 10월에 정점”(추경호), “한·미 금리 격차 수치에 얽매일 필요 없다”(이창용)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달러 사재기하지 마라”고 호통치는 게 낫다. 파월 Fed 의장처럼 “높은 금리가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든지.

금리는 계속 오를 것이다. 원유 감산으로 국제 유가가 들썩이면서 금리 인상이 더 시급해졌다. 미국 기준금리(상단)는 3.25%. Fed는 올해 말 4.5%를 예상한다. 올해 남은 두 차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75%포인트, 0.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게 끝이 아니다. 파월 의장은 “물가상승률 2%까지 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미국 물가상승률을 3.4%로 전망했다. 내년에도 2%는 어렵다.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내년에 기준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

한국 기준금리도 경로가 분명해졌다. 이 총재가 애써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건 외환위기 이후 이번까지 네 차례 있었다. 역전 폭은 1999~2001년(1.5%포인트), 2005~2007년(1.0%포인트), 2018~2020년(0.75%포인트)였다. 우려할만한 자금 유출은 없었다. 이번은 좀 다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각국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원화가치가 급락하며 취약하다. 북한 핵 도발로 컨트리 리스크도 커졌다. 역전 폭이 1.0%포인트를 넘어선 안 될 듯하다.

한국 기준금리는 2.5%다. 미국이 연내 4.5%까지 올리면 우리도 3.5%는 돼야 한다. 올해 남은 두 차례 금융통화위원회(10, 11월)에서 잇따라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아야 3.5%가 가능하다. OECD는 내년 한국 물가상승률을 3.9%로 계속 불안하게 봤다. 내년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팀은 이런 현실을 미리 알려 개인·기업이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게 해야 한다.

중차대한 시기에 경제팀의 엇박자는 안 된다. 이 총재가 지난달 빅스텝을 시사했는데, 추 부총리는 “미국 금리인상을 쫓아가자니 경기와 가계부채가 심각하다”고 했다. 정부는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협의하겠다고 했으나 이 총재는 “이론적으로는 필요없고, 부작용만 키운다”고 말했다. 양측이 일관된 메시지를 줘야 시장이 덜 혼란스럽다.

외환위기 때 한은에서 금융감독권을 떼내는 것을 놓고 정부와 한은이 원수처럼 싸웠다. 금융위기 때는 300억 달러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자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서로 자기가 했다’고 공 다툼을 했다. 이번엔 한 몸처럼 움직여도 될까 말까다. 경제가 어려우면 경제팀은 어차피 욕먹게 돼 있다. 맷집이 좋아야 한다. 안이하거나 무르다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금융 쪽 위기가 실물로 옮겨가면서 기업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 것이다. 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