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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 논설위원이 간다

문 정부 비리 대명사 된 태양광, 그래도 포기해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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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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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태양광발전 활성화에 투입한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업비 2616억원이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국무조정실 발표가 지난달 있었다. 그중 관련자 376명과 1265건의 위법 사례는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혈세가 이권 카르텔 비리에 사용돼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정치권에서는 태양광 비리와 관련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일 ‘태양광 비리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튿날 정부도 정부 합동점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진상을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이뤄진 태양광 관련 대출은 16조3000억원, 사모펀드는 6조4000억원으로 총 22조7000억원이다. 이 중 얼마가 위법 혹은 부적절하게 집행됐는지 곧 밝혀질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RE100 기업들, 재생에너지 찾아야

산업계에서는 다른 큰 소식이 들렸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15일 ‘RE100 이니셔티브’ 가입을 알렸다. 스마트폰과 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DX부문은 2030년, 반도체 사업을 맡는 DS부문은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5.8TWh를 사용했다. 서울시 전체 가정 전력 사용량의 1.8배에 달한다. 현재 국내 원료원별 발전 비중을 보면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은 20.1%에 그친다. RE100 가입 선언을 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달성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전긍긍하던 삼성전자가 이제서야 국내 기업 중 23번째로 RE100 가입 선언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율적 선언이라고 하지만 가입 선언을 안 하면 국내외 업체 간 교류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향후 강행규정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 실시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국내 제조 분야 대기업의 29%, 중소기업의 10%가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직ㆍ간접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국민 혈세, 이권 카르텔 비리에”
기업들은 잇단  RE100 가입 선언
영농형 태양광발전 가능성 보여
원자력과 같이 가야할 에너지 전략

그런데 ‘RE100 2020’ 연례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전환이 어려운 10개국에 한국을 포함했다. 더군다나 발전 비중이 원자력을 포함한 전체 에너지원의 15.1%로, 재생에너지 중 가장 큰 태양광 비리가 불거져 나오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는 어려워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8월 30일 공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 지난해 10월 확정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과 비교해 신재생에너지를 8.7%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의도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거나 억제하지 않는다”며 “달성하기 쉽지 않은 속도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농지ㆍ산림 훼손 없는 태양광발전 모색

은행권의 태양광 관련 부실대출이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되던 지난 6일 대구행 SRT에 몸을 실었다. 대구에서 택시로 30여 분 이동해 도착한 992㎡ 규모의 영남대 근처 경작지에는 약 3m 높이의 기둥 위에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돼 있었다. 그 아래 땅에는  배추와 파가 자라고 있었다. 배추는 태양광 패널이 없는 일반 땅의 것들보다 단단하기는 덜했지만 더 컸다. ‘영농형 태양광발전’ 실증 단지였다.

경북 경산시 영남대 근처에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발전 시범단지의 모습. 배추ㆍ파를 재배하는 경작지 위 약3m 높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경산=문병주 기자

경북 경산시 영남대 근처에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발전 시범단지의 모습. 배추ㆍ파를 재배하는 경작지 위 약3m 높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경산=문병주 기자

영농형 태양광발전은 농경지에서 작물 재배를 하지 않고 태양광발전만 하던 기존 형태와 달리 농산물 생산과 태양광발전을 병행한다. 농지면적 감소라는 부작용이 없다. 독일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관련 연구와 실증작업을 해 왔다. 쌀 재배의 경우 벼의 포화 광합성을 위해 일간 약 5시간의 빛을 필요로 하는걸 감안해 차광률(발전 설비에 의해 농지에 드는 빛이 차단되는 비율)은 30% 이내가 되도록 태양광 패널이 배치된다. 벼를 비롯해 밀ㆍ포도ㆍ녹차 등을 키우는 총 77건의 실증사업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참여해 온 정재학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에게 이 시스템, 그리고 향후 태양광발전의 방향성을 물었다.

정재학 교수가 영농형 태양광발전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산=문병주 기자

정재학 교수가 영농형 태양광발전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산=문병주 기자

태양광 사업 비리가 커지고 있다.
“버섯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장이라고 속여 그 위에 태양광 패널을 얹은 것들이 많다. 농지 위에 그런 구조물 설치해놓고 농사를 아예 짓지 않은 것이다. 관련 지침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태양광 모듈을 제대로 개발하는 회사나 실증작업을 진행해 사업성을 키우고 있는 공인된 곳들이 사고낸 게 아니다. 태양광발전이 전체적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억울해하는 이들이 많다.”
지침이 엉터리였단 말인가.  
“기존 농지나 산림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한다. 검증된 기술력을 갖춘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철저한 검증을 통해 중국산 패널만 그대로 가져다 설치비용 받고 장사하는 식의 일들을 막아야 한다. 그런 게 다 비리로 드러난 것 아닌가. 예를 들어 경사도 15도가 넘으면 패널 설치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거나 이런 지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산림 훼손도 막을 수 있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태양광 발전시설로 훼손된 산림은 5184ha에 달했다. 산지 전용허가 현황은 2017~2021년 총 9710건으로 지난 2012~2016년 2476건 대비 4배 증가했다.)

“전기 팔아 연금처럼 소득 올려” 

영농형 태양광발전을 통해 농민들이 실제로 소득을 올리나.
“경남 함양의 기동마을 등 몇 곳에서 시범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쌀 수확량은 일조량 부족 탓에 패널 설치 전의 80% 정도로 줄었지만 태양광발전 전력을 팔아 월 70만∼100만원(1650㎥ 기준) 번다. 패널 설치비용까지 고려하면 6년 정도면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으로 계산됐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연금처럼 돈을 받을 수 있고, 젊은이들의 귀농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기르는 농작물은 어떤 게 적당한가.
“벼농사의 경우 쌀이 남아돌아 문제가 되고 있어 벼 수확량 감소가 있더라도 전기 판 돈을 고려하고 다른 작물에 비해 노동력이 적게 드는 점을 고려하면 좋다. 녹차ㆍ포도 등 수확량이 늘어난 작물도 있고, 줄어든 것들도 있다.” (실증 작업 결과 쌀 수확량은 80% 수준에 그쳤지만, 농업기술원과 국내 전력 기업이 2018년부터 실시한 조사에서 녹차의 수확률은 11%, 포도의 수확률은 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큐셀에서 개발한 영농형 태양광 모듈은 작물에 태양이 비교적 잘 들도록 하기 위해 크기를 줄이고, 반사광까지 흡수할 수 있는 양면형이다. [사진 한화큐셀]

한화큐셀에서 개발한 영농형 태양광 모듈은 작물에 태양이 비교적 잘 들도록 하기 위해 크기를 줄이고, 반사광까지 흡수할 수 있는 양면형이다. [사진 한화큐셀]

농민들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런 점을 악용해 부실 금융 대출이나 사기가 일어났다. 비용 절감은 결국 기술력이 좌지우지한다. 설비 설치의 경우 기존에는 각 기둥을 세우고 그 후에 패널을 설치하는 식으로 해서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현재는 미리 기둥과 패널을 결합해서 만들어 세우는 작업을 하는 공법이 개발돼 비용을 많이 줄였다. 태양광 패널도 마찬가지다. 비리 연루된 태양광 패널은 거의 전부가 중국산 아니었나. 한화큐셀과 협력해서 영농형 태양광 발전에 맞는 패널을 개발해 실증 단지에 설치했다. 작물에 태양광이 더 들 수 있도록 했고, 양면형이다. 작물이 반사하는 빛까지 뒤쪽 면에서 흡수해 전력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 전기를 한국전력공사가 고가에 구입한다는 지적도 있다.
“규모가 작고 활성화가 안 돼서 그런 측면이 있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영농형 태양광과 같은 1석2조의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 늘어난다면 가격을 지금처럼 높게 쳐 주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명 25∼30년 패널, 법 제한으로 8년 사용

태양광 모듈의 환경파괴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 기한을 연장하거나 제대로 재활용 사용된다면 이를 피할 수 있다. 한화큐셀에 따르면 태양광 모듈은 약 25∼30년의 수명을 다해 폐기되더라도 98%까지 재활용이 가능하다. 현재 영농형 태양광 설비 사용 기한은 8년으로 제한돼 있다. 정 교수는 설치ㆍ철거 비용의 감소를 위해서라도 현재 사용기한을 최소 20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선 작물의 품질에 피해를 주지 않고 수확량이 전년 대비 80%만 넘으면 20년간 영농형 태양광발전사업을 할 수 있다.

우리 국회에도 이미 사용 허가 기간을 20년으로 늘리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정 교수는 법안 통과가 지체되는 이유에 대해 “태양광사업이 정치적으로 엮이면서 정쟁의 대상이 됐다”고 탄식했다. “지금은 태양광 발전을 강조하면 마치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전 정부 지지자로 치부된다”는 얘기다. 그는 “원자력과 태양광 발전은 함께 추진해야 하는 에너지 전략”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