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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 142만원  ‘금송이’라는데…울진 농민이 우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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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지난달 7일 강원 양양속초산림조합 송이 공판장에서 조합직원이 주민들이 채취해온 송이를 선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7일 강원 양양속초산림조합 송이 공판장에서 조합직원이 주민들이 채취해온 송이를 선별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생을 이곳에서 송이를 캐며 살았는데 산불로 산이 통째로 불에 타버린 일은 처음입니다. 삶의 터전이 사라진 기분입니다.”

40년간 경북 울진군 북면 검성리에서 송이를 캐며 생계를 유지해 온 엄정섭(62)씨는 지난 3월 역대 최장 산불로 기록된 울진·삼척 산불로 송이산을 잃었다. 울진·삼척 산불은 서울 면적(605㎢)의 30%가 넘는 2만923㏊(울진 1만8463㏊, 삼척 2460㏊)를 태우고 진화됐다. 산불이 진화되기까지는 213시간 43분이 걸렸다. 송이가 나는 ‘송이산’도 70%가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영덕에 이어 두 번째 송이 주산지인 울진은 주민의 20%가량인 1만여 명이 송이 채취를 하고 있다. 엄씨처럼 ‘산 하나만 보고 사는 주민’들이다. 엄씨는 “2000년 강원 동해안 산불이 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지역 산에 송이가 안 난다. 최소 30년은 지나야 송이 채취가 가능할 텐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송이는 자연임산물로 분류돼 산불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해는 ‘울진 산불 재해구호 성금’으로 산불 피해 송이농가에 지원이 이뤄졌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가 전달한 88억7175만원이다.

지난 3월 발생한 산불로 경북 울진군 송이산 70%가 불에 타 송이 채취량이 급감했다. 김정석 기자

지난 3월 발생한 산불로 경북 울진군 송이산 70%가 불에 타 송이 채취량이 급감했다. 김정석 기자

하지만 대규모 산불에 따른 울진 송이 생산량 급감은 피할 수 없었다. 산립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일 기준 9575㎏였던 울진 송이 공판량은 올해 같은 시기 2608㎏으로 4배 가까이 급감했다. 작황도 좋지 못해 1~2등급 상급 송이도 채취량이 적었다.

울진군 관계자는 “송이산이 불에 타 송이 채취를 포기한 주민들이 다른 생계 수단을 찾아 떠나면서 송이 채취량이 급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두 번째 송이 주산지인 울진 송이 채취량이 급감하고, 강수량 등 기상여건이 좋지 못해 작황이 부진하면서 주변 지자체 송이 가격도 폭등했다. 송이 최대 주산지인 영덕에서도 울진·삼척 산불보다 약 한 달 앞선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지품면과 영덕읍 일대에 산림 400여ha를 태우는 산불이 나 송이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산림조합중앙회 송이 공판 현황에 따르면 10월 1일 기준 1등품 송이 1㎏ 단가가 강원 양양은 142만3800원에 달했고 경북 봉화 82만1000원, 영덕 81만원, 청송 74만2000원 등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약 30만원 비싼 수준이다.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가 제철인 송이를 예년보다 맛보기 훨씬 어려워진 상황이다.

송이 채취가 어려워진 울진 송이농가를 위한 대책도 나오고 있다. 건강기능성 식품이나 화장품 원료 등으로 사용되는 ‘복령’을 산불 피해 지역에 심는 방안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울진군 북면 두천리 일대에 산불 피해목을 이용한 ‘복령’ 재배시험 연구지를 구축했다. 산불피해 국유림 0.3㏊에 불에 탄 소나무 150그루를 활용했다. 오는 2024년까지 복령 형성과 생산량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송이농가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복령이나 도라지 등 대체 임산물 재배 기술 등을 습득하는 데 수 년이 걸릴 것으로 우려돼 송이농가들에 실질적 해결책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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