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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 찾는 YS·박정희 생가, 문재인 집엔 주말도 10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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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거제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출입구에 “조용히”라고 적힌 검은색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문 전 대통령 생가 방문객은 몇 년새 급격히 줄어들었다. 안대훈 기자

지난달 23일 거제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출입구에 “조용히”라고 적힌 검은색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문 전 대통령 생가 방문객은 몇 년새 급격히 줄어들었다. 안대훈 기자

지난달 23일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남정마을. 50가구 100여명이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주민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날 일이 드문 곳이라고 한다. 마을 뒤에 우뚝 솟은 선자산(해발 507m)에서 불어온 바람에 노랗게 익은 벼가 ‘살랑살랑’ 나부끼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마을 분위기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집이 있다.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다. 생가에는 ‘이곳은 주민이 사는 일반 가정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바로 옆에는 ‘함부로 들어올 시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오니 출입을 삼가해달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생가는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막혀 있었다. 높이 2m, 길이 8m의 ‘ㄴ’자로 꺾인 녹색 그물망 형태 철제 펜스가 울타리처럼 출입구를 둘러싸고 있었다. 펜스에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게 검은색 비닐의 가림막도 처져 있었다. 생가에 사는 50대 마을 주민이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면서 취한 조치다.

생가는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주말마다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5000명이 방문했다. 관광객들은 생가에 아무 때나 불쑥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집주인이 트랙터로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전혀 관리 되지 않아, 복원할 문화유산”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출입구에 설치된 녹색의 철제 펜스와 검은색 가림막. 안대훈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 출입구에 설치된 녹색의 철제 펜스와 검은색 가림막. 안대훈 기자

문 전 대통령 생가는 240㎡ 부지에 연면적 36.36㎡ 규모의 슬레이트집이다. 문 전 대통령은 1953년 1월 이곳에서 태어났다. 6살까지 이 마을에 살다가 부산 영도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 부모는 6·25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철수 때 피란 와 이 마을에 머물렀다고 한다. 생가는 아주 낡은 모습이다. 슬레이트 지붕에는 녹색 이끼가 말라붙어 있었고 콘크리트 벽도 곳곳이 검게 변색해 있었다. 철제 울타리에 가림막까지 설치돼 있다 보니 관광객은 눈앞에 두고도 찾기가 쉽지 않다. 거제시가 설치한 ‘생가 안내판’도 오랫동안 관리가 안 돼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마을 부녀회장 김모(48)씨는 “생가를 못 찾길래 (위치를) 말해주면 ‘거기가 생가라고요? 엄마야!’라며 놀란다”며 “처음 온 사람들이 대개 실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왔던 분들이 다시 오는데 ‘이번엔 좀 바뀌었나’ 싶어서다. 매번 실망하고 돌아간다”며 “복원이 안 되니, 지금은 많이 안 온다. 주말에 10명도 올까 말까”라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 생가는 대부분 복원해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 생가에서 차로 30분 거리(21㎞)인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에는 ‘김영삼 대통령 생가’가 있다. 536㎡ 부지에 기와를 얹은 목조 건물 3동으로 이뤄진 집으로, 2001년 5월 거제시가 복원했다. 바로 옆에는 지상 2층 규모로 대통령 기록전시관과 공원도 조성돼 있다.

김해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찾는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김해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찾는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2009년 9월 복원됐다. 초가집 형태로 본채와 아래채, 헛간, 옛날식 화장실 등이 있다. 주변에는 대통령 묘역과 생태문화공원이 있다. 최근에는 지상 2층 규모의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도 개관했다. 이와 함께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경북 포항 이명박 대통령, 충남 아산 윤보선 대통령 생가도 복원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거제 ‘김영삼 대통령 생가’를 찾는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중앙포토]

거제 ‘김영삼 대통령 생가’를 찾는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중앙포토]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생가에 25만9000여명이 방문했다. 같은 기간 김영삼 대통령 생가는 8만2000명이 찾았다.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도 6만8000명, 충남 아산의 윤보선 대통령 생가와 경북 포항 이명박 대통령 생가에도 각각 3900여명, 5500여명이 다녀갔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생가는 복원되지 않았다. 거제시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생가 복원을 검토했다. 그해 생가에서 약 300m 떨어진 부지(2164㎡)를 임대해 임시주차장과 화장실도 조성했다. 이곳 임대료(연간 1000만원)는 거제시가 내고 있다. 하지만 사유지인 문 전 대통령 생가에 주민이 살고 있어 복원이 쉽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도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며 복원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후 복원 계획이 흐지부지됐다.

“시 예산으로 매입·복원 투입, 형평성 문제”

문 전 대통령 퇴임 뒤인 최근 거제에서 “문재인 대통령 생가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석봉 거제시의원은 지난달 19일 의회에서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달리) 문 전 대통령 생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생가는 거제시가 갖게 된 소중한 문화 자산이자 관광자원”이라며 생가 복원을 주장했다.

거제시는 생가 부지와 건물 매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복원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역대 대통령 생가는 대부분 가족 등 직접 이해관계인이나 지지자들이 매입,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면서 복원 작업이 추진됐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는 고교 동창생들이 매입, 김해시에 기부하면서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됐다. 김영삼 대통령 생가는 부친인 고(故) 김홍조 옹이 부지와 건물 일체를 거제시에 기증하면서 재정비가 가능했다. 나머지 대통령 생가도 대부분 ‘기부채납’ 또는 ‘(대통령) 자가소유’ 형태여서 복원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는 게 거제시의 설명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용지 매입부터 복원 전반에 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다른 대통령 생가 복원 사례와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지지자들이 매입해 시에 기부하는 등 생가 복원 여론이 조성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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