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리에 130만원…잡히면 버린다던 이 생선 몸값 치솟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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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흑산도산 홍어의 집산지였던 전남 나주 영산포 ‘홍어의 거리’. 1970년대 영산강 하구언 공사로 바닷길이 막히기 전까지 홍어가 육지로 유통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과거 흑산도산 홍어의 집산지였던 전남 나주 영산포 ‘홍어의 거리’. 1970년대 영산강 하구언 공사로 바닷길이 막히기 전까지 홍어가 육지로 유통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서… 섬이다!”

지난 2일 오후 6시쯤 전남 신안군 ‘1004(천사) 뮤지엄파크’. 무대에 오른 남성 3명이 서로 웃옷을 벗기기 위해 몸싸움을 했다. 홍어장수 문순득(1777~1847년)이 바다에 표류할 당시를 재현한 마당극이다. 문순득은 조선 말엽 홍어를 사러 흑산도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필리핀·마카오·중국 등을 표류했다.

연극 속 문순득은 “(배에 설치할) 돛을 만들겠다”며 동료들의 윗옷을 벗기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던 일행 앞에 일본 류큐(琉球·오키나와)섬이 눈에 들어와서다. 관객들은 육지에 오른 문순득이 말이 통하지 않아 손발 짓을 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관광객 정은석(46·대전시)씨는 “영화 수리남을 보면서 홍어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국제교역의 한 품목이라는 점에 놀랐는데 홍어장수 문순득도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수리남’ 속 주인공인 배우 하정우.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수리남’ 속 주인공인 배우 하정우.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흥행 이후 주목받는 생선이 있다. 오래 삭힐수록 알싸하고 깊은 맛이 더해지는 홍어다. 과거 흑산도와 영산포 등 전라도에서 주로 먹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맛보는 별미가 됐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온라인은 물론이고 일부 편의점에서도 ‘썬 홍어’를 판다.

수리남 성공 후 유통업계에서는 홍어 마케팅도 등장했다. 최근 일부 백화점과 편의점 등에선 할인전을 비롯한 다양한 홍어 판매 전략을 내놓고 있다. 국내산을 팔면서도 ‘수리남 홍어’라는 표현을 쓰는 온라인쇼핑몰도 있다.

홍어는 알싸하고 톡 쏘는 맛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호불호(好不好)’는 있지만 삭힐수록 특유의 맛과 향이 더해져 “삭힘의 미학”이라고도 부른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함께 먹는 ‘삼합’은 미식가들이 일미로 꼽는다. 간과 뼈를 넣고 끓이는 애탕은 얼큰한 국물과 내장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음식이다. 신안이 고향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홍어를 유달리 좋아해 흑산도 홍어를 공수해 먹곤 했다.

암컷과 수컷의 몸값 차이가 유난히 큰 것도 홍어의 특징이다. 암컷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는 데다 육질이 쫄깃쫄깃해 비싼 값에 팔린다. 흑산도수협 공판장에 따르면 지난 8일 현재 8㎏급 암컷 홍어는 42만원 선에 위판되고 있다.

홍어는 원래 서민들이 막걸리와 함께 즐기던 음식이지만 특유의 알싸하고 단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귀한 어종이 됐다. 2010년 이후 주산지인 흑산도산은 마리당 소매가가 40만~130만원을 오르내린다. 흑산도 홍어잡이는 2021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국산 홍어가 품귀 현상을 빚자 칠레산 홍어가 대량 수입됐다. 한국 수출 후 드라마 속 수리남처럼 잡히면 버리던 칠레산 홍어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이후 칠레 정부는 남획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몰리자 수출을 규제하기에 이른다. 현재 식탁에 오르는 홍어가 국내산이 아니면 아르헨티나산·우루과이산으로 돌아선 배경이다.

조선시대 때 일본, 필리핀, 마카오, 중국 등을 표류하고 돌아온 홍어장수 문순득(오른쪽)이 외국인과 얘기하는 모습을 재현한 그림. 프리랜서 장정필

조선시대 때 일본, 필리핀, 마카오, 중국 등을 표류하고 돌아온 홍어장수 문순득(오른쪽)이 외국인과 얘기하는 모습을 재현한 그림. 프리랜서 장정필

홍어와 관련해 유명한 인물은 홍어장수 문순득과 손암 정약전(1758~1816년)이다. 신안 우이도(소흑산도) 출신인 문순득은 1801년 홍어를 사러 흑산도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에 가까스로 도착한다. 이후로도 필리핀·마카오에 표류하고 중국을 거쳐 3년2개월 만에야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문순득 생환 소식은 당시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문순득을 불러 표류 과정과 해외 풍속·언어·의복·선박 등에 대해 전해 듣는다. 문순득이 정약전에게 구술한 표류 과정을 담은 책이『 표해시말(漂海始末)』이다. 지금도 우이도에도 문순득 동상과 생가, 정약전 유적지가 남아 있다.

문순득의 해외 표류 여정을 담은 정약전의 『표해시말』. 프리랜서 장정필

문순득의 해외 표류 여정을 담은 정약전의 『표해시말』. 프리랜서 장정필

문순득의 표류 과정은 수리남 속 주인공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홍어 사업을 위해 수리남에 갔다가 마약사범이 돼 갖은 고난을 겪는다. 문순득 또한 홍어를 사기 위해 주산지인 흑산도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해외를 돌며 긴 표류를 하게 된다. 문순득 마당극과 문순득 축제(문페스타)를 지휘하는 손재오 극단 갯돌 총감독은 “문순득은 조선시대 최초로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인물”이라며 “그의 해양 미의식(美意識)을 표현하는 콘텐트를 지속해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포에서 뱃길로 90㎞ 이상 떨어진 흑산도산 홍어를 유명하게 만든 곳은 나주 영산포다. 고려시대 말엽 흑산도 앞섬인 영산도 주민들이 일본 해적을 피해 영산포로 피난 온 게 시초다. 당시 주민들은 영산포까지 뱃길로 보름 정도를 가는 과정에서 삭혀진 홍어 맛을 알게 됐다. 이동 중 부패한 다른 생선과는 달리 항아리 속에 있던 홍어는 먹어도 뒤탈이 없고 알싸한 풍미까지 갖고 있었다. 현재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는 40여개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회·구이·국·어포로 좋다. 국을 끓여 먹으면 뱃병에 좋고, 숙취를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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