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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 5년새 15% 급증, 고금리 덮친 올해 크게 늘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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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막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최근 5년 새 1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한계기업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2017년 3111개에서 2021년 3572개로 14.8% 늘었다.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에도 못 미치는 기업을 말한다. 지난해 말 전체 기업(외부감사 수감 기업) 가운데 14.9%가 여기에 해당했다. 중소기업은 100곳당 16곳, 대기업은 12곳꼴로 각각 한계기업으로 분류됐다.

워크아웃 기업 수, 6년새 반토막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5년간 한계기업 수 증가율은 대기업이 40.6%로 중소기업(11.2%)보다 컸다. 업종별로는 지난해 기준 부동산업이 18.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도소매업과 전기전자, 자동차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한계기업의 만성화가 두드러졌다. 2012~2021년 중에 두 번 이상 한계기업을 경험한 곳이 전체 한계기업의 72.8%를 차지했다. 10년 내내 한계기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기업은 297개에 달했다. 이 중 84.5%(251개)가 중소기업이었다. 10년 내내 매출액이 아예 ‘0’인 기업도 27곳이었다.

한계기업의 수익성, 이자 부담 능력 등도 눈에 띄게 악화했다. 이러한 경영 지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크게 흔들렸다. 전체 한계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은 2017년 -5.5%에서 2021년 -7.1%로 떨어졌다. 2021년 기준 매출의 7%가 넘는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10.7%에서 -14.1%로 훨씬 나빠졌다. 2017년 -1.0배였던 한계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도 2021년엔 -1.6배로 더 악화했다.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0.9배에서 -1.6배로 나빠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처럼 한계기업 상황이 안 좋아진 건 제조업체의 경쟁력 약화와 정부 규제, 부실기업에 대한 과보호 등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래부터 한계기업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았는데 코로나 유행을 거치면서 더 늘어났다”며 “정부가 일자리나 중소기업 보호를 내세우면서 한계기업 퇴출이 늦어진 데다 신산업 규제로 기업 성장이 막힌 것도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올해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계기업 비중이 높아지고 이들의 부실 위험도 커질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경기 둔화,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기업 대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상승까지 겹쳐서다. 지난해 8월 이전엔 연 0.5%였던 한은 기준금리는 1년 만에 2.5%로 뛰었다. 또한 한계기업이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조달한 차입금이 2019년 42조2000억원에서 2021년 53조3000억원으로 급증하는 등 코로나 유행 중 위험 신호도 감지됐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영 여건을 가정할 경우 지난해 말 14.9%였던 한계기업 비중은 올 연말 18.6%까지 커질 것으로 한은은 예측했다. 한은은 “한계기업의 비은행권 자금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들의 부실이 나타나면 금융 시스템 전체로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계기업 기업 여신 심사와 비은행 금융기관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이번 달에 한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이상 오르면 국내 대기업 절반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상당수 기업이 유동성 압박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 “기업 여신심사 강화해야”

하지만 경영 악화 등으로 부실화된 기업들의 실질적 구조조정이나 회생은 미진한 편이다. 금융 당국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내년 일몰 예정)에 근거해 해마다 대기업·중소기업의 신용 위험을 평가·분석하고, 부실 징후 기업엔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절차)을 진행한다. 한무경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2584개였던 신용위험평가 등급(A~D) 선정 기업 수는 지난해 3373개로 30.5% 늘었다. 하지만 부실 등으로 워크아웃을 진행 중인 기업은 같은 기간 200개에서 100개로 되레 반 토막이 났다.

한무경 의원은 “한계기업의 워크아웃 등 신속한 구조조정과 회생을 늘려야 산업계 전체로 위기가 확산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준석 교수는 “코로나로 일시적으로 나빠진 곳보다는 4~5년 이상 계속 문제인 한계기업부터 구조조정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부실기업은 나가고 새로운 기업이 들어오면서 생산성과 성장률도 높아질 것”이라면서 “한계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그 기업 퇴직자의 재교육·재훈련 등을 지원하는 식으로 정책 방향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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