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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어요" 또박또박 한국말…비오는 무대 달군 앤 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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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22' 무대에 선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 사진 프라이빗커브

9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22' 무대에 선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 사진 프라이빗커브

“보고 싶었어요.”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31)는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9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22’(슬라슬라)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앤 마리는 “요즘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 중”이라며 “안녕하세요” “재밌어요?” 등 공연 중간중간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슬라슬라 헤드라이너로 3년 만에 내한 #80분간 '2002' 등 히트곡 20여곡 열창

해외 아티스트가 내한 공연을 올 때면 으레 준비하는 인삿말과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그녀가 가진 진정성 때문이다. 2019년 4월 예스24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진행한 그는 7월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11월 네이버 브이라이브 어워드 등 그 해에만 세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2018년 발매된 정규 1집 ‘스피크 유어 마인드(Speak Your Mind)’ 수록곡 ‘2002’가 역주행하면서 연이어 한국을 방문한 것. 홀리데이 페스티벌 당시 주최 측에서 “우천으로 인해 뮤지션 요청으로 공연이 취소됐다”고 안내하자 앤 마리는 이에 반박하며 무료 게릴라 공연을 열기도 했다.

“음색·미소도 예쁘지만 가치관 공감”

오버핏 티셔츠에 편안한 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앤 마리는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오버핏 티셔츠에 편안한 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앤 마리는 자유롭게 무대를 누볐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코로나19로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80여분간 20여곡을 부르며 무대를 누볐다. 공교롭게 이날도 비가 왔지만 아티스트와 팬들 모두 개의치 않았다. 온종일 내린 비로 잔디마당은 진흙밭이 됐고 돗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즐기는 페스티벌의 당초 취지와 거리가 멀어졌어도 1만여 관객 대부분이 우비를 입고 앤 마리를 보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일찌감치 스탠딩 존에 자리 잡은 회사원 김민지(25)씨는“앤 마리의 음색도 좋고 웃는 모습도 예쁘지만 음악에 담긴 가치관이나 메시지가 정말 공감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규 2집 ‘테라피(Therapy)’로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2위에 오르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한 그의 공연 역시 심리 치료를 받는 기분이었다. 지난 2월 출간된 에세이 『알잖아, 소중한 너인걸』(데이원)에서 7살 때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고 9살 때 취미 삼아 시작한 가라테로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가면증후군에 시달려왔다고 고백한 터였다.
2015년 가수 데뷔 이후에도 자신에 대한 의심과 수치심, 타인에 대한 불신 등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브리싱(Breathing)’ ‘뷰티풀(Beautiful)’ ‘퍼펙트 투 미(Perfect To Me)’로 이어지는 무대를 통해 스스로 이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어떤 대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2002'는 2019년 국내 연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2002'는 2019년 국내 연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그는 “그동안 옛 남자친구에 관한 노래를 많이 썼는데 이 노래들은 좀 다르다”고 말했다.
“저는 항상 나 자신이기보단 다른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어요. 내 다리ㆍ가슴ㆍ엉덩이 모든 게 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죠. 테라피를 통해서 아름다움은 외면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좋은 일을 하면서 내면을 가꿔갈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긴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무대 의상 역시 이러한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책에서 “헐렁하고 톰보이시한 자선 상점 스타일을 입는 게 여성 팝스타로서 마땅히 보여줘야 할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믿었다”며 남들이 시키는 대로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공연을 하며 겪었던 불편한 감정을 밝혔다.
“어떤 대상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그는 검은색 털모자와 오버핏 티셔츠에 편안한 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흠뻑 젖어서 춤을 추는 모습은 관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내일 공연이 없으니 목이 쉬어도 괜찮다”며 열정적으로 공연을 이끌어갔다.

“한국은 내 책 번역된 유일한 국가”

7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알잖아, 소중한 너인걸』 북토크를 진행한 앤 마리. 사진 지니뮤직

7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알잖아, 소중한 너인걸』 북토크를 진행한 앤 마리. 사진 지니뮤직

‘2002’가 나오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는 “알아도 같이 불러야 하고, 몰라도 같이 불러야 한다”며 관객과 함께 노래를 이어나갔다. 2019년 당시 가온차트(현 써클차트)에서 가요를 제치고 연간 종합 1위에 오른 곡답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틱톡 손댄스 챌린지 배경음악으로 인기를 끌며 역주행이 시작된 만큼 어린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그는 “한국에서 ‘2002’가 3 플래티넘(3억회) 스트리밍 인증을 받았다고 들었다”며 꾸준한 사랑에 대해 언급했다. 써클차트가 2018년 인증 제도를 도입한 이래 3P를 받은 것은 폴 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 3곡 뿐이다.

앞서 7일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지니뮤직과 밀리의서재 주관으로 열린 북 토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앤 마리는 “평소 독서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책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가로서 무대에 서니 기분이 새롭다. 한국은 내 책이 번역된 유일한 국가”라며 감사를 표했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나에 대해, 또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지금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며 매일 조금씩 쓰고 있으니 두 번째 책도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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