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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기어간 큰딸만 살았다…무주 일가족 5명 가스중독 참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일 전북 무주군 '일산화가스 중독 추정' 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집주인 80대 노모 생일을 맞아 이 집에서 자던 일가족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10일 전북 무주군 '일산화가스 중독 추정' 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집주인 80대 노모 생일을 맞아 이 집에서 자던 일가족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80대 노모 생신 모였다가…사위·딸·손녀 5명 참변 

80대 노모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시골집에 모였던 일가족 5명이 숨진 사고를 조사 중인 경찰과 소방당국이 '일산화탄소 중독'을 잠정 사망 원인으로 결론지었다. 현장에 함께 있던 일가족 6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큰딸은 집 안에 가스가 퍼질 당시 화장실로 몸을 피해 목숨을 건진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 무주경찰서는 10일 "무주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 1차 간이 검사 결과 사망자 혈액에서 모두 일산화탄소 양성 반응이 나왔다"며 "현재까지 가스 누출로 인한 일산화탄소(CO) 중독을 사망 원인으로 보고 있고, 범죄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전날 1차 현장 감식을 마쳤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이날 오전 11시부터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북소방본부와 무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9일) 오후 4시55분쯤 전북 무주군 무풍면 주택에서 집주인 A씨(84·여)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A씨 큰사위(64)를 비롯해 큰손녀(33), 작은딸(42·추정), 작은사위(49)다. A씨 큰딸 B씨(57)는 구조 당시 의식이 없었다. 현재 전북 익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A씨 아들 신고를 받고 출동해 집 안에 쓰러져 있는 일가족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3명은 거실, 2명은 방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이들 몸에 특별한 외상은 없었고, B씨만 화장실 안쪽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9일 전북 무주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추정 사고로 일가족 5명이 숨졌다. 사진은 가스가 새어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보일러. 사진 전북소방본부

9일 전북 무주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추정 사고로 일가족 5명이 숨졌다. 사진은 가스가 새어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보일러. 사진 전북소방본부

"큰딸 화장실서 발견…이상 징후 느낀 것으로 추정" 

A씨 집에는 화장실이 2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는 거실, 다른 하나는 보일러실과 붙어 있다. B씨는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가스 누출 당시) B씨가 뭔가 이상 징후를 느끼고 화장실로 기어들어 가다 의식을 잃은 것 같다"며 "일산화탄소가 거실과 방 쪽으로 스며들어 집 안 전체가 가스 냄새가 심하게 진동해 소방대원들도 산소마스크를 쓰고 (A씨 집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8일 A씨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일가족이 A씨 집에서 하룻밤 묵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이 집에 혼자 살고 있고, 자녀와 손주 등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사고 전후로 날이 갑자기 추워져 A씨 가족이 보일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주기상지청에 따르면 지난 8일 무주 최저 기온은 7.8도, 9일은 10.5도였다. 더구나 A씨 집이 있는 무주 무풍면은 해발 고도 370m로 무주읍보다 170m 더 높다.

무주는 덕유산·적상산 등으로 둘러싸여 평소에도 도내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은 편이라는 게 전주기상지청 설명이다. A씨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된 9일에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7㎜의 비까지 내렸다.

10일 전북 무주군 '일산화가스 중독 추정' 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집주인 80대 노모 생일을 맞아 이 집에서 자던 일가족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10일 전북 무주군 '일산화가스 중독 추정' 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집주인 80대 노모 생일을 맞아 이 집에서 자던 일가족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경찰 "보일러 연통 꽉 막혀…가스 누출 가능성"

경찰과 소방당국은 기름보일러와 배기구를 연결하는 연통 이음 부위에 문제가 생겼고 가스가 집 안으로 누출되면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일산화탄소 인체 허용 농도는 50ppm이다. 800ppm가량 되면 2시간 안에 실신한다.

일산화탄소는 일반적으로 보일러의 불완전 연소로 발생한다. 기름보일러는 A씨 집 실내 바닥에 설치돼 있고, 보일러 본체와 연통 연결부 등엔 검은 재가 쌓여 있었다. 소방당국은 가스가 누출되면서 연통 안 재가 일부 외부로 빠져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주인 A씨가 숨져 정확한 보일러 설치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보일러 연통이 이물질로 꽉 차 있는 1차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A씨가 최소 수년간 보일러를 계속 사용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시공 가능성은 작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무주경찰서 관계자는 "영업장에선 정기 검사 등 준수 사항이 있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하지만, 사고가 난 집은 개인이 보일러를 설치한 뒤 관리하면서 쓰던 주택이어서 준수 사항이 없다"며 "설령 있더라도 혼자 사는 노인이 (정기 검사 등을) 요청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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