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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검찰총장이 지켜야할 ‘세한도 송백 정신’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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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은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검찰청 직원들을 상대로 청렴 강의를 하면서, 추사 김정희의 서화 ‘세한도’를 보여주며 “한겨울 추운 날씨가 돼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그림의 의미를 알려주고 “지조 있고 가난한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원석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45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원석 신임 검찰총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45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세한도는 이 총장의 말처럼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세상이 모두 자신을 버렸을 때 변함없이 자신을 대해준 제자 이상적의 의리를 논어에 나오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을 들어 칭송하면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총장은 문재인 정부 때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해 검찰 핵심보직인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역임했으나, 윤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와 맞서면서 그 여파로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밀려난 후 제주지검장으로 연거푸 좌천 인사를 맛봤다. 중견 검사장을 제주지검으로 발령 낸 것은 옷을 벗으라는 의미이므로, 이 총장은 권력에 의해 이른바 유배길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유배는 당쟁을 통해 정권을 차지한 세력이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사용됐는데, 오늘날도 특히 권력의 부침에 따라 그 운명이 심하게 요동치는 검사들에게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선 초기 유배는 함경도나 평안도 등 변방으로 보내는 원배(遠配)가 주를 이뤘으나, 당쟁이 격화된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섬으로 보내는 도배(島配)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권력에 밉보여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 지방의 한직을 전전하는 ‘원배’를 당했는데, 제주로 간 이 총장은 ‘도배’를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세한도는 1844년 59세의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그린 그림으로, 자신이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통과 메마름을 먹과 거친 필선을 이용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연합뉴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세한도는 1844년 59세의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그린 그림으로, 자신이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통과 메마름을 먹과 거친 필선을 이용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연합뉴스

아름다운 섬 제주가 예나 지금이나 유배지로 활용되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 맑은 날 제주시 용두암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모습의 작은 섬이 보인다. 제주도와 추자도 중간에 위치한 ‘관탈도(冠脫島)’라는 섬이다. 제주로 유배 온 관리들이 배를 타고 이 섬을 지나면서 귀양지에 다다랐음을 알고 머리에 쓴 관을 벗었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은 여전히 위 이름으로 불리면서 제주가 유배지였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에서의 유배 생활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암울한 현실의 연속이었고,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세상의 빛을 다시 보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유배 중 기본적 생활 기반의 미비와 기존 사회와의 고립과 단절 등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나, 이러한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견뎌내고 결국에는 삶을 다시 꽃피우는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필자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에서 제주지검장으로 밀려 내려간 후, 제주에 유배 온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서 공직자로서 특히 검사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됐다. 그때 새삼 알게 된 유배객 이야기 중 조정철과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의지와 인간에 대한 의리, 그리고 유배의 고통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바꾸고 예술혼을 승화시킨 훌륭한 사례들이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정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 의혹을 받고 20대 중반에 제주로 유배를 가게 된 조정철은 정적인 제주목사김시구의 괴롭힘으로 죽을 고비를 맞았으나, 의녀(義女) 홍윤애가 죽음으로써 이를 막아 겨우 살아나게 된다. 이후 조정철은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고 30년의 혹독한 유배 생활을 견뎌낸 끝에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순조가 즉위하면서 외가인 안동 김씨의 득세로 복권돼 다시 벼슬길에 나가게 된다. 그 후로 자신의 직위보다 낮은 제주목사에 자원해 내려가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 ‘홍의녀지묘(洪義女之墓)’라는 비석을 세우고 그 뒤에 가슴을 에는 한 편의 시를 남김으로써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린 여인에 대하여 의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는 충청도관찰사와 형조판서(현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후 82세에 세상을 떠났다.

제주도 대정읍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 중앙포토

제주도 대정읍 추사 김정희 선생 유배지. 중앙포토

추사 김정희는 성균관 대사성, 형조참판(현 법무부 차관) 등을 지내며 출세 가도를 달리던 중 55세 되던 해 안동 김씨 세력과의 정쟁에서 밀려나 제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담장에 가시 달린 탱자나무를 둘러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위리안치’ 형까지 받는데, 추사는 9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삶에 대한 마음의 자세까지 바꾸게 된다. 제주 귀양길에 벗이었던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해남 대흥사를 찾았는데, 이때 앞선 세대의 명필인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보고 당장 떼라고 호통치고는 자기가 쓴 글씨를 달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배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을 때, 전에 자신이 잘못 봤다며 이광사의 글씨를 다시 걸게 했다고 하니 제주 귀양살이를 통해 추사체라는 조선 최고의 글씨체를 완성함과 동시에 인격의 완성도 이룬 듯하다.

이 총장이 추사의 세한도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제주지검장 시절 유배 온 선비들의 심정을 느껴보았을 것으로 보인다. 인생과 공직에 대해 많은 번민이 있었을 것이고, 더 이상 공직에 연연하지 않고 그곳에서 공직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간혹 세상이 변해 유배지에서 복권된 선비들처럼, 이 총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서 제주지검장에서 일약 대검차장을 거쳐 검찰총장까지 오르게 됐다.

그렇게 따져 본다면 이 총장은 스스로 검찰총장직이 덤으로 주어진 자리라고 여기고 대검찰청 직원들에게 세한도를 강의하면서 사실은 자신이 국가와 국민에 대하여 추운 겨울 시들지 않은 송백(松柏)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총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은 국민 신뢰의 뿌리이자 밑바탕”이라고 하면서 “검찰총장의 소임을 맡겨 주신다면 어떤 의심도 들지 않도록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신뢰를 얻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러한 다짐의 일환일 것이다.

안동 김씨의 득세로 조정철은 유배에서 복권됐으나, 그러한 안동 김씨로부터 배척당한 추사 김정희는 귀양을 가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면서 필자를 비롯한 윤 전 총장의 선배인 20여명의 검사장들이 검찰을 떠나게 됐으나, 이 총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서 검찰총장이 되었다. 권력과 그에 따라 춤추는 관직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아무쪼록 이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을 지켜냄으로써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앉힌 권력이 아닌 국가와 국민에 대하여 세한도 송백의 정신을 간직하는 검찰총장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전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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