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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좋은 것 찾아 35시간도 비행...'반값' 목숨건 세 남자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형마트 3사 바이어들이 지난달 서울 중구 중앙일보에서 좌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왕희(44) 롯데마트 델리개발팀 상품기획자(MD), 전형욱(43) 홈플러스 수산팀 바이어, 이완희(37) 이마트 과일팀 바이어. 각각 7000원대에 판매하는 반값 탕수육, 이전보다 40% 가량 가격을 낮춘 킹크랩, 통상 가격보다 40% 가량 저렴하게 내놓은 샤인머스캣을 들고 있다. 강정현 기자

대형마트 3사 바이어들이 지난달 서울 중구 중앙일보에서 좌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왕희(44) 롯데마트 델리개발팀 상품기획자(MD), 전형욱(43) 홈플러스 수산팀 바이어, 이완희(37) 이마트 과일팀 바이어. 각각 7000원대에 판매하는 반값 탕수육, 이전보다 40% 가량 가격을 낮춘 킹크랩, 통상 가격보다 40% 가량 저렴하게 내놓은 샤인머스캣을 들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반값 치킨·피자·탕수육-. 최근 소비자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은 대형마트의 ‘반값 시리즈’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은 다락같이 오른 물가에 각각 ‘최저 가격’을 내세운 가격 파괴 제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가격을 낮추는 걸까. 대형마트 바이어들은 품질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내 곳곳은 물론 지구 반대편까지 샅샅이 훑는다. 직접 바다목장을 운영하거나 직거래로 중간마진을 줄이기도 한다. 기상 관측센터 데이터를 활용해 비축량을 결정하고, 출하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타이밍에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중앙일보는 최근 3대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로부터 ‘가격과의 전쟁’을 벌이는 생생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완희(37) 이마트 과일팀 바이어, 전형욱(43) 홈플러스 수산팀 바이어, 조왕희(44) 롯데마트 델리개발팀 MD다. 세 사람은 “올해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 고물가에 가격 낮추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이완희(이마트)=보통 작황과 인건비, 기름값, 환율, 통관 등 5가지 요소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전엔 이 중 한두 가지가 가격을 높이는 주요 변수였는데, 지금은 5가지 모두가 총체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조왕희(롯데마트)=고물가 상황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복합으로 인플레이션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모든 게 빠짐없이 오르는 시기라 원재료를 수급해 요리화하는 델리(즉석조리식품) 특징으로는 더 어려운 시기다.

전형욱(홈플러스)=이쪽에서 17년 일했는데 올해 경제 상황이 제일 힘든 것 같다.

-어떻게 가격을 낮췄나.

조왕희=‘반값 탕수육’ 등을 기획했는데 원가 절감을 위해 기존 물량 대비 3배 이상을 사전 기획하거나 원재료를 직소싱했다. 환율·물류비가 오르니 품목을 대체하기도 하고, 인력과 제조 과정 고민을 많이 한다.

전형욱=‘당당치킨’은 매장에서 직접 튀기면서 마진을 최소화한 사례다. 수산물은 시세가 오를 시점을 고려해 3~4개월 전부터 기획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 시장에서 제일 큰 소비자인 중국이 얼마나 많은 물량을 가져가나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 명절에 가격이 뛸 것 같으면 수개월 전부터 가격을 협의해 물량을 확보하는 식이다.

이완희=직거래 금액을 늘린다. 청과시장을 다니며 우수 농가 리스트를 만든 뒤 삼고초려해 만나 달라고 요청하고 설득해 직거래로 구매해 가격을 낮춘다. 외국인 노동자도 줄어 인건비가 많이 올랐는데, 예전에는 질 좋은 고급 과수만 골라내는 인력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전체를 구매한다. 작은 과수도 ‘못난이 과일’ 같은 묶음으로 판매할 수 있어서다. 소비자 지갑이 얇아진 것을 고려해 과일 커팅(자르는) 라인을 설치해 조각 과일도 내놓는다.

지난 8월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열린 '당당치킨' 할인 행사 현장 모습. 사진 홈플러스

지난 8월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열린 '당당치킨' 할인 행사 현장 모습. 사진 홈플러스

-우여곡절이 많다고 들었다.

조왕희=반값 제품도 맛을 놓칠 순 없다. 유명 셰프와 함께 수 개월간 전국 맛집을 돌아다니며 맛을 연구하고 사내외 블라인드 테스트를 수차례 거친다. 사내 푸드이노베이션센터 등에서 계속 리뉴얼한다.

이완희=신선하면서도 저렴한 겨울철 체리를 찾아 35시간 비행해 칠레 산티아고로 이동하고, 다시 2400㎞ 떨어진 남극 근처까지 간 적도 있다. 망고를 사러 과테말라에 간다. 국내 우수 농가 관리도 중요하다. 수확을 시작하는 새벽 4~5시에 가서 일을 거든다. 인기 과일 트렌드가 바뀌면 농가에 품종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설득한다.

전형욱=꽃게는 신선하게 공급하기 위해 신진도, 격포에서 전국의 홈플러스 133개 점포로 직송을 보내기도 한다. 금어기가 풀리는 당일 산지로 내려가 일주일씩 머무르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생산자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현장 목소리도 듣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가격과 마진은 어떻게 결정하나.

전형욱=사내·외 인사에게 제품을 보여주고 ‘얼마면 사겠나’를 조사한다. 그렇게 가격 포인트를 정하고 산지 시세나 물량 등 이슈를 협력사와 논의해 합의를 한다.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면 우리나 협력사나 손해 안 보고 팔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노마진으로 갈 건가, 경쟁 업체 가격에 대응할 건가도 생각한다. 전략적으로 ‘이번 주는 축산, 다음 주는 과일’ 등 프로모션 시스템과 핵심 상품이 있다.

조왕희=사내 품평회가 있다. 통상 가격과 경쟁사 가격도 고려한다. 과거엔 경쟁사끼리 ‘10원 전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요새는 소비자가 품질도 많이 본다.

이완희=우리가 9900원에 팔 생각으로 기획한 제품에 대해 소비자 조사에서 ‘5980원에 사겠다’고 나오면 그 제품은 접어야 한다. 가격을 너무 낮추려다 보면 품질이 떨어질 수 있고, 그 제품을 사 본 소비자들은 재구매를 하지 않을 테니 가격을 무작정 낮추진 않는다.

지난달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밥상 물가 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도울 게 있을까.

이완희=농식품부에선 ‘농할’이라는 농축산물 할인쿠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만족해 하니 많이 해줬으면 한다. 부가세나 관세 등 유통 단계에서 지원해줄 수도 있다.

전형욱=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해수부 지원금이 많아졌으면 한다. 가격 파괴 행사 홍보도 해주면 좋겠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 좋고 환율도 문제라 품질 좋은 국내외 제품을 어떻게 계속 싸게 공급할지 고민이다.

조왕희=요즘 소비자들은 가격 민감도가 높다. 워낙 서민 경제가 어렵다 보니 반값 상품에 열광하는 것 같다. 더욱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도 따지니 품질도 따라간다. 소비자들이 ‘이 정도 가격이면 먹어볼 만하다’, ‘가성비가 맞다’ 이렇게 평가해주면 기쁘겠다.

이완희=우리는 늘 싸면서 질 좋은 상품을 기획하려 노력해왔는데 요즘 고물가 상황에 더 주목 받고 있다. 바이어가 유통의 꽃이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책임져야 하니 어깨도 무겁다. 특히 품질을 놓치는 순간 소비자들은 기가 막히게 알고 반응한다. 일시적 할인에 끝나지 않도록 익숙하게 생각하던 패턴을 깨뜨리고 산지와 연결해 가격과 품질을 혁신하겠다.

대형마트 3사 바이어들이 지난달 서울 중구 중앙일보에서 대화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대형마트 3사 바이어들이 지난달 서울 중구 중앙일보에서 대화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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