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일회용컵에 담은 음료를 살 때 300원을 내고 반납하면 돌려받는 건데, 지난 6월에 시행하려다 12월로 유예됐다. 당초 대상은 전국 105개 브랜드의 3만8천여 프랜차이즈 매장이었으나 제주도와 세종시부터 시행키로 했다. 편의점·개인카페 등이 빠졌다는 형평성 논란에다 반환컵 보관공간과 세척, 무인회수기 설치 관리, 회수율에 따른 실효성 논란 등 잠시 마시고 버리는 컵 때문에 인프라 구축이 지난하다.
이 제도는 필자가 환경부에서 일하던 2002년에 이미 시행했다. 업계와의 자발적 협약으로 형광등부터 시작해 품목별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시범운영하던 때였다. 하지만 ‘불편하고 회수율이 낮다’(37%)는 이유로 6년만에 폐지됐다. 2018년 일회용컵 사용은 프랜차이즈 매장만 해도 28억개고 전체 비공식 추산치는 무려 250억개에 이른다. 코로나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 이쯤되면 뭔가를 해야 하는데, 20년 전 제도 부활이 최적의 선택인지 고민스럽다.
일회용컵 연간 250억개 소비
플라스틱, 신의 선물이 재앙으로
리사이클 기술혁신 업그레이드
재처리 인프라 구축 지원해야
빈용기 보증금 반환제도(DRS) 도입 국가는 2020년 23개국, 내년에는 9개국이 추가된다. 그러나 일회용컵에 대해 법제화한 나라는 없다. 밴쿠버와 캘리포니아주는 일회용컵에 25센트를 부과했고 아일랜드는 20펜스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환경세 부과가 감축에 효과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EU는 2018년 일회용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퇴출키로 하고 2021년부터 대체가능한 몇몇 품목부터 사용금지했다. 일회용컵은 세금부과(유상판매)를 권장한다. 세계경제포럼은 2018년 자원순환경제 글로벌 플라스틱 행동 파트너십을 출범시켰다.
플라스틱은 20세기 신의 선물이다. 플라스틱이 없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문명의 재건이 가능하지 않았다 할 정도다. 1945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39년 대비 4배였다. 1980년대에는 생산량이 철강을 앞질렀다. 어떤 형태로나 성형되고 가볍고 단열성·전기절연성·빛투과성·탄성·내진성이 뛰어난 데다 값은 싸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항공기에는 강철보다 75% 가볍고 강도는 10배, 탄성은 7배 높은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이 들어간다. 최첨단 반도체 소자·OLED·디스플레이·2차전지·인공위성·의료기구·인공혈관·로봇·태양광전지에도 플라스틱이 핵심소재다.
풍요의 플라스틱 시대, 생태계 위기가 깊어간다. 1997년 미국의 찰스 무어 선장은 태평양 거대 쓰레기 해역을 발견하고 『플라스틱 바다』를 썼다. 먹이로 알고 플라스틱을 새끼에게 먹이는 영화 ‘알바트로스’의 장면, 가장 깊다는 수심 11㎞의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봉투 등은 충격이었다. 남극의 표층수에서도 PE·PP·나일론 등의 미세플라스틱(5㎜ 이하)이 검출됐다. 500년까지 견디는 폐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된 뒤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에게 돌아온다. 일주일에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양이 신용카드 한개(5그램)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플라스틱의 용도는 포장·소비자제품·섬유·전기제품·수송·산업기기·건축·헬스케어와 농업 등으로 구분된다. 그중 가장 수명이 짧은 것이 포장용이고 가장 긴 것이 건축용이다. 이중 포장재가 세계 플라스틱 총생산량의 36%, 소비자제품이 10%를 차지한다. 플라스틱을 모두 천연자원으로 대체한다면 또다른 재앙이 될 것이다. 한번 쓰고 휙 버리는 일회용 소비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해야 한다.
플라스틱 이슈는 자원순환 프레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1988년 플라스틱산업협회(SPI)는 열가소성 플라스틱 리사이클 분류체계를 만들었다. PET·HDPE·PVC·LDPE·PP·PS·기타의 순으로 1번부터 7번까지 매겼다. 그런데 실제 리사이클되는 것은 PET와 HDPE 정도고 세계 리사이클링 비율은 9%다. 이유는 분류체계대로 오물 없이 회수가 어렵고 새것보다 품질은 떨어지고 값은 비싸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리사이클은 기계적, 화학적 두 가지로 나뉜다. 기계적 리사이클은 PET병이 가장 유리하나 깨끗한 폐PET를 수입하는 실정이다. 화학적 리사이클에는 열분해와 화학적 분해가 있다. 열분해 유화기술 개발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 활기를 띠다 유가 안정으로 침체된 후 최근 되살아나고 있다.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한 2018년은 리사이클 산업기술의 변곡점이 되었다. 기술혁신에서 특히 화학적 리사이클이 주목받고 있다. 복합소재나 저급한 플라스틱도 석유화학 공정과 기술을 활용해 원료나 중간체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의 핵심기술, 플랜트 건설과 운전비용, 재처리 공정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해서 정부의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
또 다른 변수는 2024년 시안이 작성될 ‘플라스틱 오염의 종식: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약’ 움직임이다. 플라스틱의 생산·이용·리사이클·폐기의 전 주기에 걸친 국제규제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는 분명하다. 좁은 국토에 자원빈국으로서 석유화학산업과 기술력 기반의 리사이클링 산업 업그레이드로 ‘플라스틱 제로 웨이스트’ 선도국이 되는 길이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