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北 계속되는 도발에 日 "장거리 미사일 1000발 이상 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공격을 당했는데 반격할 능력이 없으면, 도발을 당하는 상태가 계속된다."(나카타니 겐(中谷元) 총리보좌관)
"(북한이) 수십 발을 쏘아 올릴 경우, 반격 능력이 없으면 일본을 지킬 수 없다."(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

지난 4일 북한이 5년 만에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자 일본 정치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탄도미사일을 23차례 쏘는 등 미사일 위협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일본도 빨리 이에 맞서는 방위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일본 도쿄 방위성 부지에 설치된 지대공 패트리엇 미사일(PAC-3) 요격 시스템. AFP=연합뉴스

일본 도쿄 방위성 부지에 설치된 지대공 패트리엇 미사일(PAC-3) 요격 시스템.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도 "때가 왔다"는 듯 호응하고 나섰다. 최근 북한 미사일과 관련한 정부 관료들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은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 "반격 능력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 등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해협 위기 고조 등 지역 안보 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추진돼 온 일본의 방위력 증강 움직임에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미사일 요격, 안 하나 못 하나

일본이 계획 중인 방위력 강화의 내용은 크게 ▶미사일 방어 체계 확충 ▶원거리 타격 수단 확보▶자위대의 전투 지속 능력 증강으로 나뉜다. 이 중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깊이 연관된 것이 일본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파괴하는, 이른바 요격 능력 강화다.

현재 일본은 미사일이 일본을 겨냥해 날아올 때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에 탑재된 요격 미사일(SM-3)이 대기권 밖에서 쏘아 떨어뜨리고, 명중하지 않을 경우 지대공 패트리엇 미사일(PAC-3)로 요격하는 '2중 요격 체제'를 갖추고 있다. 요격미사일이 탑재된 이지스함은 8척, PAC-3는 전국 곳곳에 34기가 있다.

그러나 지난 4일 북한이 쏜 미사일은 일본 열도 부근에서 최고 970㎞까지 올라가 SM-3가 요격할 수 있는 최고 높이 500㎞를 훌쩍 넘어섰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자위대가 미사일의 발사 직후부터 낙하까지 완전한 탐지 추적을 했다. 피해가 예상되지 않아 파괴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으나 애초 요격을 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 흘러나오는 대형 모니터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 흘러나오는 대형 모니터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이에 따라 신형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이지스함)을 2028년까지 2척 배치해 요격 능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새로 도입되는 이지스함은 기준 배수량이 약 2만 톤, 전체 길이는 210m 이하 급으로 현재 자위대가 보유한 함정 중 최대 규모다. 평소보다 높은 고도에서 쏜 고각 발사 미사일 요격에 유용한 레이더 SPY-7과 요격미사일 SM-6를 채택한다.

선제 타격능력 확보에 집중

일본 정부는 "한계가 크고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전직 방위성 관료) 요격 능력보다는 이른바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에 더 집중하고 있다. 명칭은 반격 능력이지만 적의 공격 움직임이 포착됐을 때 상대방의 미사일 기지 등을 파괴할 수 있는 사실상의 선제 타격 능력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21일 일본 도쿄에 있는 육상 자위대 아사카 기지를 방문해 12식 지대함 미사일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21일 일본 도쿄에 있는 육상 자위대 아사카 기지를 방문해 12식 지대함 미사일 앞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격 능력의 핵심 무기는 장거리 미사일이다. 일본은 그동안 평화 헌법에 따른 '전수방위(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어)' 원칙에 따라 선제 타격에 유용한 미사일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12식 지대함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00~200㎞ 정도에 불과하다.

방위성은 이르면 2024년까지 북한과 중국 연안부까지 닿을 수 있는 사거리 1000㎞ 이상의 미사일을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장거리 미사일을 1000발 이상 확보해, 일본과 대만 사이에 위치한 난세이(南西) 제도와 규슈(九州) 등지에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방위비 5년간 매년 1조엔씩 늘려"

일본 정부는 연말에 개정하는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에 반격 능력 보유를 포함한 방위력 강화 방안을 명시할 방침이다. 반격 능력의 경우 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자위 목적으로 실시하는 반격은 현행 헌법 상으로도 가능하다"는 해석을 마쳤다고 한다.

지난 4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지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TV에서 이를 알리는 경고방송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지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TV에서 이를 알리는 경고방송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더 큰 걸림돌은 예산이다. 일본이 도입을 추진 중인 신형 이지스함 2척 개발에만 약 5000억엔(약 4조 90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민간업체들은 추산한다. 8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현재 5조 3687억엔(약 53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96%인 일본 방위비를 향후 5년 간 매해 1조엔 정도씩 증액할 방침이다. 이렇게 할 경우 2027년 방위비는 10조엔(약 98조원)을 넘어 현재의 약 2배로 늘어나게 된다.

재원으로는 국채 발행이나 증세가 거론되지만 증세는 전 국민적 반발을 부를 우려가 높아 결국 국채 발행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나라가 갚아야 할 빚이 1000조엔(약 9900조원)을 넘어선 상태에서 또 거액의 국채를 발행하는 부담도 크다. 요미우리신문은 "비용 문제 등으로 방위력 강화 계획이 어중간해질 경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지도력을 의문시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