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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정의 시선

민주당의 친일 공세, 대 국민 가스라이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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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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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훈련 '극단 친일'로 몰고

노·문 정부도 한 훈련, 묻지마 공세  

현재와 미래의 적이 누군지 외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뉴스1]

또 '친일 몰이'다. 일본과는 반일(反日) 캠페인으로, 국내 반대 진영을 향해선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한 지난 5년이 벌써 그리워진 걸까.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 오래된 숙제"라고 들고나온 대통령, 죽창가를 틀면서 "애국이냐! 이적이냐!"라던 민정수석, "분단에 기생해 존재하는 친일파 청산은 국민의 명령"이라던 광복회장.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외교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은 불매운동 이벤트를 열었고 지지자들은 혐오스러운 '토착 왜구' 딱지를 여기저기에 붙여 댔다. 위안부 기금 횡령 혐의를 받고도 기고만장하던 같은 당 의원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번엔 같은 당의 이재명 대표가 나서고 의원들이 앞다투어 거든다. 북한의 전례 없는 고강도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열린 한·미·일 연합 대잠수함전 훈련을 두고 이 대표는 "극단적 친일행위" "국방참사"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에 ‘일본 자위대가 유사시 한반도에 들어올 수도 있지만’이라고 한 게 현실화되는 것이냐. 독도가 자기 땅이라 우기고 경제 침탈도 하는데 자위대 인정 근거가 될 훈련을 독도 근처에서 하나.” 지난 6·7일 국감장 등에서 한 발언이다. 훈련 전, 같은 당 안규백 의원이 군사 기밀인 훈련 장소를 SNS에 올리며 '참담하다' 한 이후 당 전체가 달라붙은 것 같다.
이 논리라면 2007년 9월 한·미·일 훈련 중 욱일기를 단 자위대 함정 세 척이 인천항에 접안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 2017년 여름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약속하고 G20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와 3국 공동성명(석 달 뒤 3국 이지스함 훈련도 있었다)까지 낸 문재인 대통령은 초 극단적 친일 행위자다. 1998년 정치·안보·경제 등 전 분야 협력을 약속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김대중 대통령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일본이 한국 경제를 '침탈'한다면 사드 문제로 7년째 보복 중인 중국은 한국 경제를 '유린' 중인데 왜 언급이 없나. 삼성과 현대는 전 세계인을 침탈하는 기업인가. 그런데 이상한 건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때도 했다"는 반박을 민주당은 전혀 들은 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미일 연합 대잠전 훈련에 참가한 전력들이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미국 이지스구축함 벤폴드함(DDG),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DDH-II), 미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일본 구축함 아사히함(DD), 미 순양함 첸슬러스빌함(CG). 대열 맨 앞쪽은 미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해군제공=뉴스1]

한미일 연합 대잠전 훈련에 참가한 전력들이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미국 이지스구축함 벤폴드함(DDG),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DDH-II), 미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일본 구축함 아사히함(DD), 미 순양함 첸슬러스빌함(CG). 대열 맨 앞쪽은 미 원자력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SSN). [해군제공=뉴스1]

한국 사회, 특히 민주당 지지자에게 친일 프레임의 효용성이 크다는 판단 등 여러 이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위협은 외면한 채 '경제 침탈' '욱일기' 같은 자극적 용어로 '내로남불'식 억지 주장을 계속하는 것, 대 국민 가스라이팅이다.
광복한 지 77년. 두 세대가 지나고 사라진 냉전도 더 복잡한 양상으로 부활했다. 미·중 격돌과 우크라이나전으로 권위주의 독재 진영과 자유민주 세계가 맞선 대전환의 시기다. 에너지, 국제공급망은 위태롭다. 6·25 전쟁 때 협공한 중국·러시아·북한이 변하지 않은 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국가 안보의 기본은 피아(彼我) 구분. 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느냐, 우리 영토와 주권·역사를 훼손하려는 세력이 누구냐, 현재와 미래 국가의 안전·번영을 위해 누구와 함께 가야 하느냐에 대한 판단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은 저서에서 "과거의 망령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것을 막고, 국민 정서가 국익을 지배하는 고질을 바로 잡아야 한·일 관계가 바로 선다"며 지도자의 미래지향적 비전과 현실주의 외교를 주문했다. 중국의 패권을 막기 위해 과거의 적 미국의 힘을 빌리는 베트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차 대전 공적인 독일의 국방력 증강을 반기는 폴란드·프랑스가 한 사례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 명분을 준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일본의 우경화를 견제하는 차원이겠으나 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하는 '유사시' 방어에 한·미·일 공조는 필수란 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한국 방어에 나설 유엔사 기지 7개는 일본에 있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과 그 이후 역사가 주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위정자들이 국제 현실을 읽지  못하고 명분만 고집하다 당한 참화와 치욕은 온전히 백성의 몫이었다.

한·미·일 훈련 '극단 친일'로 몰고 #노·문 정부도 한 일, 묻지마 공세 #현재와 미래의 적이 누군지 외면

민족해방운동론이 휩쓸던 시기 대학을 다녔다. 운동권은 김일성의 초대 내각에 친일 인사가 더 많았고, 김일성이 이후 항일 운동가들까지 숙청한 걸 외면하고 이승만 정부를 친일 세력으로 규정했다. 친일잔재 청산은 대한민국 역사와 정통성 부정, 북한 정권의 정통성 주장과 닿아 있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어서 드는 의구심이다. 북·일 관계가 풀리면 친일 몰이는 끝나는 걸까. 이재명 대표는 "정부는 사과하고 한·미·일 훈련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누구를 위한 약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