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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갈아넣으며 플랫폼 노예가 된 웹툰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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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세훈 웹툰협회 회장

전세훈 웹툰협회 회장

각종 성장 지표가 발표되고 영화·드라마 원천 소스로 주목받으며 투자자들도 몰려오는 등 한국 웹툰이 뜨겁다. 이러한 성장 속에서 웹툰 작가들은 호시절을 누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100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작품이 있고, 망가의 나라 일본에서도 웹툰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웹툰 작가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콘텐트진흥원의 2021년도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5시간, 주간 6일 작업이 평균치라고 나온다. 현실은 더욱 팍팍하다. 며칠씩 쪽잠을 자고 질병에 시달리며 1년 365일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있는 숱한 피눈물들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작가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다는 참혹한 우려는 왜일까?

독점 연재와 선인세 지급 빌미로
하루 10.5시간 과중한 작업 요구
회차별 원고료, 저작권 보호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20년 전 무료로 시작했던 웹툰의 성장세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올랐다. 불가능해 보였던 유료화가 시작되고 성과를 보이자, 모바일 중심의 유료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이후로 웹툰 산업의 성장 속도는 폭주 기관차 같았다. 작가의 수는 50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번듯한 레일이 깔리고 폭주하며 달릴 때 웹툰 산업의 주인은 작가가 되질 못 했다. 유통을 거머쥔 플랫폼이 웹툰 제작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플랫폼은 웹툰 제작사로부터 회사 지분을 넘겨받고 자본 투자를 했다. 유통과 생산을 플랫폼이 장악한 것이다. 수익에 중점을 두다 보니 오리지널 창작품보다 1차로 웹 소설에서 매출이 입증된 스토리를 바탕으로 프로덕션이나 스튜디오에서 콘티·배경·인물·효과·편집 등으로 나눠 웹툰 제작을 한다.

작품에 그림 작가라고 올라가 있다 해도 스튜디오의 직원으로 있는 것이니 수익 지분을 주장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개인 작업하는 작가도 수익 지분에 있어 크게 다른 처지가 아니다. 저작권을 가진 작가가 매출에 대해 가지는 지분은 15~25%에 불과한 기형을 발견하게 된다. 1000만 원 매출의 경우 정작 자신의 수입은 70만 원이라고 토로하는 작가도 있다. 20년 전에 웹툰이 시작했던 그때와 다를 바 없이 피눈물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플랫폼은 마감 지옥을 견디라고 작가로서의 덕목을 요구하면서 취급은 웹툰 산업의 소모품이다. 말이 좋아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이지, 심하면 7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플랫폼이 저작권의 주인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그저 플랫폼이라는 농지를 빌린 소작농에 불과하다. 20년간 피눈물의 결과로 작가는 플랫폼의 노예가 되어 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수천 명의 작가가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살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이다. 웹툰 작가들은 자조적인 말로 ‘온몸을 갈아 넣어서 작품을 만든다’ 라고 한다. 그렇다. 온몸이 갈리고 있다. 또 몸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청춘의 시간도 제한적이다.

100억원 매출 신화의 불꽃에 취해 온몸을 던졌지만 살아남는 자는 몇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도 태블릿 앞에 앉은 웹툰 조립공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몇 년을 계속한들 맡은 파트에서 경험치만 늘어갈 뿐, 작가로 성장시키는 시스템은 아니다. 세계 정상이라 일컫는 웹툰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그건 몇 년 후에 일이라고 차치하더라도 지금 당장 생존 위기에 처한 작가를 위한 방법은 남아 있는가?

먼저 작가에게 빚의 형태로 남게 되는 선인세의 형태가 아닌 회차별 원고료를 주어야 한다. 작가는 웹툰 속에 그려져 있는 주인공이 아니다. 오늘 하루 쪽잠이 아닌 필요한 잠을 자야 하고 하루 세끼 먹을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사람이다. 손해 비용을 작가에게 떠넘기며, 선인세 지급을 명목으로 과한 수익률을 떼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 유통비 30%만 가져가면 된다. 그 이상은 착취며 독점 연재와 선인세 지급을 빌미로 한 횡포다.

작가는 무한 소비재가 아니다. 쉬게 해야 한다. 연 2회 유급 휴재를 해달라는 요구는 눈물겹지 않은가? 먼저 작가가 살아야 웹툰 산업도 지속 발전해갈 수 있다. 뜨겁게 불타는 웹툰 산업 안에 작가가 불쏘시개로 쓰여서는 안 된다. 이들의 아우성에 답하라.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세훈 웹툰협회 회장